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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가면 종소리가 있어 좋다. 


런던에선 빅벤이라 불리는 시계탑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에서도, 그리고 전후 독일인들을 어머니처럼 위로해 왔다던 드레스덴의 성모교회당에서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런 종소리를 들으며 종교개혁 발상지 3차 학습여행단을 이끌고 알프스 북쪽 유럽 5개국을 돌고 왔다. 


테러, 테러하면서 유럽천지가 모두 테러에 공격당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착각하고 있지만 정작 내가 유럽에 있을 때 테러는 미국 맨하탄에서 발생했다. 


유럽은 모두 난민천지인줄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내 눈엔 난민에 난자도 찾을 수 없었다.

테러 걱정 안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패스파인더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일정을 맡기고 떠나는 여행이었으니 테러 걱정 없이 에펠탑에도 오르고, 알프스 산맥의 아름다운 리기 마운튼에도 오르고 프라하에서는 불타바 강을 바라보며 야경도 구경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칼빈과 쯔빙글리, 얀 후스와 웨슬리 공부도 했지만 아무래도 종교개혁의 수퍼스타인 마틴 루터의 나라, 독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지난해 가지 못한 보름스에도 갔고 루터가 신부가 되어 살기고 결심한 에르푸르트에도 갔다. 

그런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딱 1년 앞둔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독일 전체가 500주년을 맞으며 루터의 유적지를 아주 깔끔하게 재단장하고 있다는 게 확 느껴졌다. 때 빼고 광내는 모습이었다.

루터가 교황청에 반박하는 95개조 논제를 발표한 후 서서히 그의 주장이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는 기운이 감지되자 교황청은 보름스로 그를 불러 왔다. 


그를 심문한 보름스 대성당에서 달래기와 겁주기 양면작전을 썼지만 루터가 강하게 거부하자 결국 그는 이단자로 낙인이 찍혔고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기를 만나게 된다. 


부패한 교회권력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은 했건만 불안에 떨던 루터는 하나님께 이렇게 외쳤다.


 “주여, 내가 여기 섰나이다. 나를 도우소서(Here I stand, help me, Lord!)” 


그 자리가 바로 보름스 대성당이다. 성당은 연기에 그을린 것처럼 칙칙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성당 외벽을 더럽혔던 그 세월의 때가 말끔히 제거되어 새 단장을 하고 있었다. 


대성당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종교개혁기념비에는 루터를 중심으로 그를 숨겨주었던 프레데릭 선제후, 루터의 출현을 100년 전에 예언했던 체코의 개혁자 얀 후스, 그리고 그에게 개혁의 불씨를 전파했던 영국 위클리프의 동상들이 서 있는 곳이다. 


새 똥에 더렵혀지고 먼지가 누적되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던 그 동상들도 기름이 절절 흐르고 있는게 아닌가? 때 빼고 광을 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루터의 활동무대요, 개신교의 성지라 불리는 비텐베르크도 그랬다. 


이미 내년엔 이 근처에 호텔 방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벌써 500주년 열기는 가열되고 있었다. 


반박문을 붙였던 성교회 정문, 루터와 그의 절친 멜랑히톤이 나란히 묻혀 있는 정교회 내부도 말끔하게 새 단장을 한 모습이었다. 


더욱 놀란 것은 루터가 숨어서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바르트부르크 성은 아예 한국인 순례자들을 위해 녹음된 한국어 안내서비스까지 시작한 것을 보고 놀랐다. 정말 마틴 루터와 관련된 모든 도시들이 때 빼고 광내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성당이나 동상의 때를 빼고 광을 내는 것과 종교개혁 500주년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이참에 독일이란 나라가 혹시 돈벌이에 눈독을 들이겠다는건가? 


우리도 그렇다. 그냥 세월 따라 살다보니 500주년이란 게 찾아왔고 어쩔수 없이 기념예배나 드리고 몇 개 성당이나 둘러보며 셀카봉으로 사진 몇 장 찍는 것이 500주년의 전부라면 개신교 탄생기념일은 너무 허무한 이벤트로 전락될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프라하의 현지 가이드 여자 집사님 한분이 여행단 일행의 영적 급소를 때렸다. 얀 후스가 목회하던 베들레헴 교회를 소개하다가 갑자기 “지금 우리는 너무 쉽게, 너무 아무렇지 않게 성경을 읽고 있잖아요? 


루터는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 밤도 새우고 생각이 안나면 머리를 벽에 부딪치며 쥐어뜯기도 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번역하다 말고 목욕을 하고 계속했다고 들었어요. 우리는 지금 너무 쉽게 예수를 믿고 있어요. 성경의 고마움도 깨닫지 못해요. 나부터도 그래요."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의 울먹이는 신앙고백(?) 앞에 우리 모두는 함께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분의 ‘너무 쉽게’란 말이 내 가슴을 꼭꼭 찔렀다. 


우리들이 믿고 있는 지금의 개혁신앙은 죽음을 무릎 선 개혁자들의 프로테스트 때문에 얻어진 게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지금 너무 쉽게 성경을 읽고, 너무 쉽게 성찬을 받고, 회개 없이 너무 쉽게 세례를 받고, 너무 쉽게 구원을 확신하는 ‘날라리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다는 죄책감, 그래서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때 빼고 광내는 이벤트성 500주년은 독일에게 맡기자. 500주년을 입에 달고 사기 치러 다니는 목사들도 경계하자. 다시 한번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를 되새김질하며 나부터 회개의 눈물을 쏟는 500주년, 그게 진짜 우리의 몫이다.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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