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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수 목사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한번은 미국 목사님들의 목회 갈등에 관한 여러 사례에 대해 쓴 글을 읽어 본 적이 있다.
 
어쩌면 그렇게 한인 교회 내에 일어나는 갈등의 형태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내심 놀라게 되었다. 

미국 교회에서도 숱한 갈등이 교회마다 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갈등의 문제를 안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 고통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논리적으로 풀어 나가려는 그들의 진지한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그에 비해 한국 교회는 갈등을 너무 감정적으로, 때때로 격렬하게 풀어 나가려고 하기에 상처들이 깊은 듯 하다.

교회 내에서 가장 주된 갈등은 역시 목회자와 당회원 혹은 장로와의 갈등이라고 본다. 
교회마다 사역구조가 다르므로 목회자와 갈등의 대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장로교 목사이므로, 당회와 목회자의 갈등이 불가피한 것이다. 
목회자와 당회원의 갈등 양상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혼재해 있다. 

무엇보다도 목사와 당회원이 그 배경적인 출발점이 상당히 다르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목회자들은 신학적이며 성경적인 시각과 아울러 목회적인 현장에서 숱한 경험을 가지고 문제 해결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이에 반해 당회원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비즈니스와 회사 등에서 경험했던 방법을 가지고 회의에 임한다. 

즉, 그들은 문제를 좀 더 현실적인 시각에서 해결하려고 든다. 

이러한 다른 두 세계관은 종종 사고의 차이와 갈등을 만들어 낸다. 

또한 목회자는 24시간 교회라는 목회 환경 속에서 거의 빠져 산다. 

교회가 자신의 삶에 가장 우선 순위가 되며 자신을 사역과 거의 동일시하며 살아간다. 
이에 반해 당회원들은 자신의 생업의 현장과 교회를 오고 가며 사역하기에 교회 문제에 대해 목회자가 느끼는 만큼 민감하거나 절실하지 못하다. 

때때로 이러한 상이한 두 세계에서 살아가는 두 개체의 현실적인 존립과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갈등이 해결되기란 쉬운 것이 아닐 것이다
.
그러면, 어떻게 목회자와 장로들이 좋은 관계로 당회를 생산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교회의 중요한 안건들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는 영적 합의를 도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어떤 결정이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분명한 증거가 나타나도록 기도와 솔직한 논의를 계속하며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회를 이끌어 나가는 담임 목사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교인들로 하여금, 장로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영적 성숙의 장을 열어가야 한다. 
특히 당회원들의 영적 성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한 교회는 때때로 하나님의 뜻보다는 인간들의 주장과 의견으로 파묻힐 가능성이 다분히 열려 있다. 

나아가서 모든 회의가 인간적인 토론과 합의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이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회의 전후에 예배를 드리는 것과 같은 영적 분위기로 쇄신시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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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 자질이 준비된 사람을 교회의 리더로 선출해 훈련받게 해야 한다.

아울러 당회원들과 정기 당회 외에 계속해서 대화하거나 교제할 수 있는 부드러운 분위기도 만들어 가야 한다.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는 매주 토요일 새벽 기도회를 마친 후 당회원들이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거나 리더십 세미나를 계속 가진다. 

그리고 나서 조찬을 같이 나누게 된다. 

이때는 보다 비공식적인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며 격이 없는 교제를 쌓게 된다. 
또 1년에 2차례 1박2일 수련회 혹은 정책당회를 통해 목회를 평가하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깊은 시간을 갖고 있다. 

이러한 교제들이 서로의 불신과 갈등의 벽들을 무너뜨리며 한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게 하는 원동력을 세워가게 만든다.

의견 차이에서 오는 모든 갈등은 여러 각도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의견 속에 조금씩 조금씩 그 공통분모를 찾아내어야 한다. 

그리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선별해 나갈 때 갈등은 최소화되리라 믿는다. 
이 모든 과정에서 결국 목회자나 당회원 모두가 자신들의 욕망과 이기적인 본성을 포기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전적인 영적 리더의 몫이다. 

<아틀란타연합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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