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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수 목사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내 자신이 목회자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교회는 갈등이 많이 일어날 소지를 늘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믿는 신앙의 신조들을 여간해서 바꾸지 않는다. 
한번 정형화되면 그것을 목숨을 다해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까 비교적 다른 공동체보다는 훨씬 더 가치관의 충돌이 빈번해 질 가능성이 짙다. 
교회 내의 갈등이 일어나면 좀처럼 서로가 양보하려고 들지 않는다. 

이민 교회에서 일어나는 극단의 갈등은 결국 교회 해체라는 파국의 길까지 가면서도 서로 양보하며 화해하려고 들지 않는다. 

특히 한국 문화가 안고 있는 체면 중심의 문화관들이 양보나 대화와 같은 연성적 방법을 거부하고 있다.

 결국은 왜 교회가 존재하는가? 라는 궁극적인 존재 이유도 감정 싸움과 불필요한 경쟁심이라는 세상적인 요인에 매여 사라지고 마는 안타까움을 보게 된다. 

목회자가 지나치게 교회 성장에 집착하면 갈등의 요인들이 증폭된다. 

교회 성장을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자연스런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편안이 하여 목회 하는 것이 장기 목회에 필요하다. 

목회 현장은 일반 사회보다도 더 경쟁이 심한 곳이다. 

또 자칫하면 피상적인 목회를 추구하는 교회 내의 욕구에 이끌려 목회자가 무리수를 둘 때가 많다. 
내가 목회하는 이곳 아틀란타 지역은 한인 교회들이 좁은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그러니까 목회자들의 마음이 분주하고 산란해 질 수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지역 교회들이 힘을 합쳐 불신자들을 전도하고 제자화하는 큰 그림의 성시화 운동 같은 작업이 이루어 지지 않을 경우 인위적인 경쟁이 유발될 가능성이 많다. 

목회란 늘 그렇지만 본질을 추구하는 영원의 가치 위에 세워져야 한다. 

외적인 가치에 집착하면 그것은 자꾸 고갈이 생기며 먹으면 먹을수록 목마르고 허무한 것들이 되고 만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영원의 시각 속에서 이 세상과 목회를 볼 때마다 진정한 목회의 의미가 되살아 난다. 

하나님의 영원한 저 너머의 시각 속에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그런 태도는 영적 훈련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우리들이 자꾸 세상적인 가치로 목회를 하다 보니까 조급해 지고 조잡해 진다. 

그리고 자기 목회는 맞고 자꾸 남들의 목회는 틀렸다고 정죄하고 손가락질을 한다. 

목회자들은 남들에게 설교만 해서 그런지 좀처럼 자기가 안고 있는 문제나 자기의 지나친 주관적 경향을 변화하고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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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를 하면서 지나치게 자기의 신학, 자기의 교리, 자기 경직된 리더십의 쌓아올린 성곽에 갇혀 상대방이 지니는 목회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인정치 못하고 부정적으로 대하는 모습들을 목회자나 영적 리더들에게서 보게 된다. 

문제의 책임을 자신과의 관계에서 먼저 보고 먼저 참회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부족하다. 
문제의 책임을 남들에게 전가하려는 그런 무책임이 갈등을 결국 아무런 창조로 연결되지 않는 무력한 기회로 전락시킨다. 

최근에 어느 지역에서 벌어지는 노회와 개교회의 갈등을 지켜 보면서 가슴이 저려 왔다. 
저렇게 가다가는 서로가 파국이고 서로가 상처 뿐이다. 어떻게 슬기로운 솔로몬의 지혜 해결을 없을까 탄식하게 된다. 

서로의 차이점을 가슴을 털어 놓고 화해와 조정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이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숱한 갈등과 위기를 겪으면서 어느 날부터 깨닫게 된 것은 갈등의 문제는 잘만 다루면 오히려 희망과 창조의 기회라는 자각이었다. 

그 후부터는 갈등을 어떤 혐오스런 대적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서로 배울 점이 있다는 겸손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상대방이 안고 있는 정당성을 마음을 열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할 때 서로 경청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상생의 미학을 수용하게 되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용서하시며 소망을 주시고 치유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우리의 부족함을 아뢸 때 그 분은 내일의 미래를 선물로 주신다. 
이 미래를 바라보며 조급해 하지 않고 인내로 장기 목회한다면 우리 교회들의 장래가 매우 밝을 것이다. 

서로 상생의 지혜로 용납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아틀란타연합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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