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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6일간의 ‘미국 부흥회’가 끝났다. 


연방하원의원 중 한명은 교황이 상하양원합동의회 연설 중 마시던 물 컵을 가보로 간직하겠다며 슬쩍 훔쳐갔다고 전해지고 필라델피아 세계가족대회 참가자들 중 많은 이들은 울면서 교황의 메시지를 듣는 모습이었다. 


교황을 보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한 일가족은 똥차를 몰고 200여일을 운전하여 미국을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 


CNN은 브레이킹 뉴스로 교황의 동선을 샅샅이 보도하며 도배하다시피 했다.


‘앵커베이비’니 혹은 불법 이민자들은 모두 쫓아내야 한다느니 험한 말들이 대선 후보들 입에서 서슴없이 터져 나오던 참에 교황은 이민자들을 향해 “부끄러워 하지말라”며 마음을 다독였으니 그들에게서 눈물이 흘러나올 수밖에!


연방의사당에서 연설이 끝나고 그 높은 고관대작들이 내겠다는 점심초대를 거절하고 워싱턴 DC의 노숙자들을 찾아 나섰으니 그는 정말 ‘빈자의 교황’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선 미국을 방문한 역대 교황가운데 최초로 감옥을 찾아가 죄수들을 위로하며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없다, 희망을 가지고 어려운 때를 이겨내라”고 위로했다고 하니 참으로 ‘People''s Pope’이란 말을 들을 만 하다.


그런 자비롭게 보이던 교황이 백악관과 의사당에선 마치 사회주의자, 환경보호자, 개혁주의자, 행동주의자로 변신하는 모습이었다. 작심하고 미국을 때리고 나섰다. 


방탄조끼를 입지 않은 채 겁 없이 총기 규제를 들고 나왔다. 



호주 총리는 방탄조끼를 입고 다니며 총기 규제를 외친 끝에 호주는 총기가 없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고 들었다. 


이민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낙태반대 의견도 피력했다. 자본주의 병폐도 꼬집고 돈에 환장한 사회를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의 민감한 사회 잇슈를 조목조목 따져가며 관용과 생명과 행동을 주문했다.

그러니까 미국이란 회중을 앉혀놓고 ‘사회부흥회’를 연 것이다. 그런데 그 부흥회 절정의 아이템은 기후변화였다. 기후변화에 함께 대처하자고 호소한 것이다.


그가 교황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정한 것은 캐톨릭 역사상 266명의 교황 중 처음이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의 아버지였다. 프란치스코는 자연을 보호하고 사랑한 성자였다. 

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본받기로 작심한 듯 그는 가난한 자들의 벗이 되었고 기후변화 전도사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 시리아에서 시작된 난민 행렬 때문에 유럽에 비상이 걸렸다. 


지중해를 넘어오는 아프리카 난민도 큰 문제다. 이러다가는 미국도 난민촌을 세워야하고 한국이라고 예외이겠는가? 


유엔 사무총장이 난민 좀 받아달라고 하면 경기도나 강원도 쪽에 난민촌을 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정치적 난민도 지구촌의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는데 머지않아 ‘기후변화 난민’이 대거 출현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고까지 나오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도 머지않아 사막으로 변하여 지금 금싸라기 땅값이 폭락하고 물과 식물이 없어 결국 북극으로 쫓겨 가는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생명체가 멸종되고 더위에 잘 견디는 선인장 몇 종류만 지구상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불길한 예측이 정말 공상과학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지금 25% 강제절수명령에 직면해 있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별 걱정을 다하시네!”라고 말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후변화, 환경문제를 거침없이 들고 나와 연방의원들에게 정신차리라고 외친 교황은 분명 사회부흥회 강사였다.


우리 개신교는 죽으나 사나 심령부흥회다. 

구원받고 천국가야 한다. 


매일 성경 읽고 매일 새벽예배 나가서 죄를 고백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세상에 나가서 확실하게 성별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다짐하면 뭘하나? 지구가 죽고 나면 어디 나가서 무슨 성별?

우리는 사회 부흥회도 열어야 한다. 


사회정의도 외쳐야 한다. 


교황을 모방하자는 애기는 아니다. 


너무 개인영혼이 잘됨만 강조하다보니 더불어 살아야 할 이 세상환경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신앙적 수도원주의자들인 셈이다.


총기규제? 우리 개신교에선 별 관심사도 아니다.


 “쏘면 맞아야지!” 그런 식이다. 총이 문제가 아니라 총 쏘는 사람이 문제라는 총기협의의 알량한 상술에 그냥 동의하며 살아간다. 이민문제? 이민이 줄면 우리들의 교회도 타격이 크다. 그러나 이민자들을 보호하고 이민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들어볼 수가 없다.


기후변화? 이건 더 강 건너 불구경이다.

 

지난번 동성결혼 합헌 판결 때도 기도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서명운동에 돌입한 교회가 몇 개였는가? 


“9191”은 정신없이 외치면서 대법원이 무슨 짓을 하던 공화당이 무얼 주장하고 민주당이 어떤 짓을 하는지 관심조차 없다. 


이제 심령부흥회와 더불어 사회부흥회도 열어가자.


교황의 높은 인기를 질투만 하지 말고 그가 잘하는 점은 보고 배워야 미래가 보인다. 특히 기후변화문제는 지구촌의 화급한 잇슈다. 신교, 구교를 따질 때가 아니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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