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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란 말만 나오면 지긋지긋하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엔 켄터키의 한 카운티 서기가 동성결혼증명서 발급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 들어갔다가 며칠 만에 풀려났다. 


이 여성은 동성결혼 반대그룹의 갈채를 받으며 하루아침에 영웅으로 떠올랐다. 


공화당 대선후보 허커비 목사님도 감방 문 앞까지 달려가서 김 데이비스란 이 여성의 출옥을 환영하고 나섰다. 


표를 의식한 정치냄새가 폴폴 나는 장면이다.


이 카운티 서기의 행동을 놓고 또 왈가왈부 말이 많다. 


법은 지켜야 그 법으로부터 보호 받을권리가 생기는 법인데 만약 법을 안 지키면 법으로 누가 그를 보호해 줄 수 있을까? 


동성결혼은 이제 합법화되었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동성결혼을 반대하고 있으므로 절대로 그 법에 순종할 수 없다는 종교적 신념과 사회법과의 타협 없는 충돌이 길면 길어질수록 지긋지긋하다는 무관심과 냉소주의가 모락모락 만연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동성결혼이 아니라 일부다체제(Polygamy)가 뜨고 있다. 


동성결혼이 판정승을 거뒀으니 일부다처제도 승산이 있다고 나오는 추세를 보이는 셈이다. 이미 몬태나에 사는 나단 콜리어란 사람은 몬태나 주를 상대로 일부다처제를 승인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 사람은 이미 부인 2명과 함께 살고 있는데 둘 다 아내로서 사랑하며 둘 다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합법적인 아내 2명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아이고 욕심도 많으셔!”라고 비웃어 주어야 할까? 


아니면 결혼에 대한 관습이 너무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우리의 사회적 트렌드로 이해해야 할까?


일부다체제 하면 우린 몰몬교를 떠 올린다. 그러나 법에 어긋난다며 1890년에 금지된 이래 몰몬교가 일부다처제의 오명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몰몬신도들이 많이 살고 있는 유타주에서는 암암리에 일부다처제가 존재하고 있다고 들었다.


더구나 지난 2013년까지 TLC-TV에서는 일부다처제의 삶을 노골적으로 공개하는 ‘시스터 와이브스(Sister Wives)’란 리얼리티 쇼를 4번에 걸쳐 방영한 적이 있다. 


코디 브라운이란 사람이 4명의 아내와 17명의 자녀들과 살아가는 일부다처 가정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이 사람은 유타정부를 상대로 일부다처를 승인해달라며 고소를 한 끝에 승소판결을 얻어 낸 사람이다.


동성결혼 때문에 온 나라와 미디어, 이 나라의 그리스도 교회가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일부다처제가 근육질을 키워 이제 동성결혼 이후 또 다른 결전의 링에 오를 태세를 갖춰가고 있는 듯 하다.


사실 이 지구촌에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가 어디인가를 찾아봤더니 OMG!, 이 가족제도가 이렇게 흥행(?)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우선 이슬람 경전 쿠란에서는 아내를 4명까지 거느리는 것을 허용한다고 하니 이슬람권에서는 일부다처제란 당연지사인 셈이다. 


그러나 각 아내마다 따로 집을 사줘야 하기 때문에 재벌급 수퍼부자가 아니고는 일부다처는 꿈도 안 꾸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족 촌장들은 30여명의 아내를 두는 게 예사라고 한다. 오랜 전쟁을 치르면서 남자들이 동이 나니까 인구 확보 차원에서 국가가 일부다처제를 법으로 명령한 경우도 많다.

 

30년 전쟁을 끝낸 독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인구와 군사증강을 목적으로 일부다처제를 의무화했다.


그럼 성경에서 일부다처제를 찾아보자. 


일부다처제의 기원은 창세기 4장에 기록된 대로 가인의 증손자 라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아브라함, 야곱, 다윗, 솔로몬 등이 모두 일부다처주의자였다. 


솔로몬은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을 거느렸다고 한다. 그의 광적(?)인 일부다처주의는 외교적 수단으로서 왕국 간 정략결혼의 산물이라고 학자들은 해석한다.


그럼 신학자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에밀 부르너는 창조 질서 보존을 위해 일부일처제가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독일의 신학자 게르하르트 폰 라드는 “성경에서 일부일처제의 근거는 찾을 수 없다”고 했고 신정통주의 신학의 거장 칼 바르트도 “성경에서 일부일처제를 주장하고 있거나, 일부다처제를 반대하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구약은 일부다처제로 넘쳐나고 칼 바르트같은 신학의 거장도 성경은 일부다처제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면 우리는 왜 일부일처제만 고집하며 살아왔을까?


그 근거를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에게서 찾는다.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하와를 창조하셨다. 


만약 하나님의 이상이 일부다처제였다면 아담의 갈비뼈를 여러 개 뽑아내 여러 명의 여자를 창조하셨을 터인데 아담과 하와, 남자와 여자, 1대1로 남녀를 창조하신 것을 보면 틀림없이 하나님은 일부일처를 가정의 오리지날 패턴으로 구상하셨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부일처제에 대한 반론이 서서히 태동되고 있는 눈치다. 전통적인 가정의 기초가 자꾸 공격받는 시대적 환경 속에 드디어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이번 주 표지 타이틀로 이렇게 묻고 있다. “일부일처제는 끝났는가(Is Monogamy Over?).” 은근히 불길한 예감이 든다.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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