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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손자까지 3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미국 평범한 가정들의 한가로운 여름밤의 스포츠,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MLB)가 이번 주부터 개막되었다.


LA에선 LA 다저스와 샌디에고 파드레스가 다저스 구장에서 지난 6일 맞붙었다. 


이날의 최대 관심은 지난해까지 한 팀이었던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와 샌디에이고 주포 맷 켐프가 적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이들은 지난 7년 동안이나 한솥밥을 먹고 살아온 절친사이.


더구나 둘은 다저스 투타의 핵심이었다. 


MLB 최고 투수인 커쇼가 팀 에이스라면 야수 중 리더는 켐프였다. 


그런데 맷 켐프가 파드레스로 옮겨가면서 이날 처음 적이 되어 투수와 타자로 만난 것이다.


이런 일들은 NBA나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정들었던 친정집에 적으로 쳐들어온 맷 켐프의 심정은 참으로 묘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대낮 경기에도 불구하고 입추의 여지없이 자리를 메운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서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는 게 아닌가?


나는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스포츠 세계의 이런 훈훈한 해프닝에서 큰 은혜(?)를 받는다. 


땀 냄새와 함께 훈훈한 사람냄새가 가슴을 덥혀주는 것 같아 스포츠에 꽤나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아내는 이런 날 보고 아주 해설가로 나서라고 신경질을 부리기도 한다.


이날 마운드 위의 커쇼는 켐프가 팬들의 환호를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잠시 기다렸고 켐프는 헬멧을 벗어 관중에 화답했다. 


한 장의 멋진 그림이었다.


다저스는 결국 샌디에이고를 6대 3으로 격파하여 첫 승을 챙겼지만 팬들은 맷 켐프와의 만남을 더 반가워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까지 사랑을 받다 다저스를 떠난 핸리 라미제즈나 디 고든이 다저스 구장에 나타날 때도 아마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낼 것이 분명하다.


현재 NBA 서부지역 3~4위를 놓고 오르락 내리락하는 LA 클리퍼스의 감독은 닥 리버스다.


 리버스는 현역 NBA 감독 중 전술수행능력과 카리스마를 모두 갖춘 손꼽히는 명장으로 분류된다. 

그가 보스톤 셀틱스에 있을 때 폴 피어스 등 ‘빅3’를 호령하며 NBA 우승컵을 안겨줬다. 


2년 전 셀틱스에서 클리퍼스로 이적해 온 후 처음으로 보스톤으로 원정경기를 갔을 때였다. 


셀틱스 구장인 TD가든에 모여든 보스톤 시민들은 리버스 감독이 입장하자 적군의 감독으로 나타난 그에게 우레같은 박수갈채를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 


1점을 놓고 승부가 엇갈리는 살벌한 운동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이같은 사람 냄새 때문에 그때도 나는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운동 경기장에서 이런 일은 다반사다. 


그럼 교회는 어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출석교회를 옮길 경우 그 사람은 그 교회와 철천지 원수가 되고 마치 반역군처럼 취급해 버리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진다.


어느 교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성가대 지휘자가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다. 


사임이라기보다는 담임목사의 독단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목사가 알아서 물러나라고 했다. 

해고였다.


 성가대 지휘자였으면 사실 성가대의 목사 격인데 어떻게 두부모 자르듯 함께 생활하던 교인들이나 성가대원들과 관계를 단절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성가대 지휘자와 아무개 집사가 식당에서 만나는 것을 목격한 한 교인이 담임목사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니 교회는 그 다음주일에 그 아무개 집사를 직위해제 시켰다고 한다. 


맡고 있던 교회의 모든 직분을 내려놓으라고 종용했다는 것. 


교회를 나간 전 성가대 지휘자를 교회 밖에서 만나고 다닌다는 괘씸죄에 걸린 것이다.


새벽마다 교회당에 나가 교회와 담임목사님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해 오던 그 집사는 이 허무한 뒤통수가 너무 황당하게 느껴졌다. 


결국은 고민 끝에 교회로 가는 발길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밴댕이 속 같은 목회자들 때문에 교회의 신뢰도는 끝없이 추락하고 가나안 성도들(예수 는 믿지만 교회는 안나가는 성도들을 일컫은 말로 가나안은 ‘안나가’를 거꾸로 부르는 말)은 늘어만 가는 것이다.


교인들은 사실 돌고 도는 물레방아다. 


이 교회를 갔다가 저 교회를 가기도 하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이민교회는 더욱 그렇다. 


철새교인이니 뭐니 비난하는 소리도 있지만 맘에 않드는 담임목사님 모시고 신앙 생활한다는 것은 영적 고문이라며 고개를 내두르는 사람들의 고충도 이해는 해 주어야 한다. 


선배목사님들이 뒷문을 열어놓고 목회하라고 조언을 해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나간 교인들을 덮어놓고 적군 혹은 반역군으로 취급한다면 고상해야 할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추한 상처투성이로 변질될 뿐이다. 


자기 교인이 아니면 모두 딴 나라 사람으로 취급하는 지독한 개교회주의는 결국 ‘주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한 몸’ 이란 가르침을 허공의 메아리로 만들어 버린다.


다저스 개막전을 구경하면서 열심히 섬기던 교회를 등지고 사라지는 그 아무개 집사가 자꾸 생각이 났다.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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