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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에 온다는 9월이 한 두 달도 아니고 8개월이나 남아있는 판국인데 벌써 필라델피아에선 방문기간에 맞춰 한 주간 하우스 렌트비가 3만 달러까지 치솟고 있다고 한다. 


세계 가족대회 참가 차 필라델피아에 오는 교황 때문에 이 도시로 1백50만에서 2백만 명이 몰려들 것이라고 하니 집 가진 사람들은 한 대목 보겠다고 벼르는 모양이다.


뉴욕을 거쳐 워싱턴DC도 방문하는 교황은 의사당에서 연설하는 일정 외에 중요한 시성식이 일정이 잡혀있다. 


그런데 이번 시성식을 통해 성자(Saint) 반열에 오르는 인물을 두고 찬반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후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란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다. 


한국에서 공부마치고 미국에 온 1세들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여기서 중고등학교만 나왔어도 세라를 모르면 간첩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난 1988년 북가주에 있는 카멜 미션을 방문해 세라 신부를 복자(福者)로 시복한 바 있다. 


카멜 미션은 세라가 묻혀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27년 만에 세라는 복자에서 성자가 되는 것이다.


‘세인트 세라’가 되는 것을 놓고 찬성파는 당연한 일이라고 환영하는 반면 반대파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욕 먹이는 처사라고 맞서고 있다. 


지난주일 LA다운타운에서는 세라의 초상화에 나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그려 넣은 피켓을 들고 반대 시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세라는 누구인가? 


우선 벤추라 시청 앞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LA에서 가까운 샌퍼난도 미션, 샌가브리엘 미션, 샌후안 캐피스라노 미션에도 그의 동상이 서 있다.


말리부에 가면 ‘세라 리트릿’이란 수양관이 있다. 


거기에도 태평양을 바라보고 서 있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이 쯤 되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짐작이 간다.


한마디로 말하면 스페인과 멕시코가 캘리포니아를 지배할 당시 21개의 미션가운데 9개의 미션을 건립하여 미개했던 캘리포니아를 ‘문명한 나라’로 개화시킨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 왕이 직접 걸었다는 왕의 도로, 즉 ‘엘 카미노 레알(El Camino Real)’을 따라 샌디에고 미션부터 카멜에 있는 산 카를로 미션까지 여러 개의 미션을 건립, 운영하면서 미 서부지역에 복음을 전파한 인물. 미션으로 원주민과 어린이들을 데려다 농사법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한 세라는 뱀에 물려 평생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고 한다. 


14년 동안 2만 4천 마일을 순회하면서 5,300여명의 원주민에게 영세를 주었다. 


당시 캘리포니아 원주민 약10%에 해당하는 숫자이니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반대파에서는 “웃기지 마라, 세라는 복음전도자가 아니라 범죄자였고 집단학살자였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린이들을 잡아다 미션에서 강제노동을 시켰고 평화롭게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가던 인디언들을 식민지화 했을 뿐 아니라 유럽의 질병을 끌어들여 스페인과 멕시코가 캘리포니아를 지배할 당시(1769-1848) 인디언들의 인구가 1/3로 급격히 줄어들게 한 장본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션이란 사실 복음화란 명분을 내 걸고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배 앞잡이 노릇을 해 온 정치적 하녀였고 인디언들과의 끝없는 반목과 대립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과라니 족의 슬픈 운명을 그린 영화 ‘미션’을 보면 그런대로 공감이 간다. 


그런 미션을 9개나 세운 세라를 성인으로 추대한다고? “교황님 제발 참아주세요!”라고 시성식에 찬물을 끼얹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베드로를 부를 때 성 베드로, 바울을 부를 때도 성 바울이라고 말한다. 


거기다 성 어거스틴에서 최근에 성자가 된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성인들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은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세라의 시성식을 놓고 그의 과거 행적에 비추어 타당한지 여부를 교황청인들 꼬장꼬장 다 조사해 보지 않았을까? 


그러니 지금에 와서 성인추대 반대를 외쳐봤자 ‘뒷 북’이 아닌가 싶다.


하여간 죽은 사람을 놓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은 사실 역사적 교훈을 얻자는 것 말고 무슨 딴 뜻이 있겠는가? 


죽은 영혼은 하나님의 손에 맡겨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성인으로 추대했다하여 무슨 하늘나라 성인 전용 VIP 룸으로 옮겨지는 것도 아니고 천국에서 높은 자리로 수직 출세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나치 상징까지 동원해서 한 신부의 19세기 사역을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깎아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캐톨릭 교회가 세라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일을 놓고 개신교 쪽에서 감 놔라 대추 놔라 참견 할 형편은 아니지만 성인에 대한 바른 이해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성인에 이를 수는 없어도 매일매일 예수님처럼 살아가려는 영적 노력이 바로 성인으로 가는 길이다. 


인간은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죄의 유혹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없기에 성인의 문턱에까지 왔다가도 타락하여 넘어질 수 있다. 


그 부끄러운 한계와 연약함 때문에 늘 겸손하게 그 분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는 매일 죽고 새 사람을 입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하루하루가 바로 작은 예수의 길, 작은 성인의 길이다.


그렇게 따지면 사실 개신교에는 성인이 넘쳐나서 교황까지 나서서 시성식을 여는 번거로움 따위는 필요도 없다.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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