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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빈들의 마른풀 같이 메마른' 한국땅에 촉촉한 단비와 같았다.

어딘가 분풀이를 하지 않으면 폭발할 것 같던 한국 사람들은 '빈자의 벗'으로 찾아와 낮은 목소리로 화해와 용서를 청하는 교황의 속정 깊은 '섬김의 리더십'에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듯 보였다.

월드컵 인파를 능가하는 백만 인파가 모였다는 광화문 광장의 시복식은 아마도 교황의 이번 방문의 하이라이트였을 것이다.

캐톨릭교회엔 우리 개신교회엔 없는 죽은 사람을 성인으로 추대하는 예전이 있다.

모두 4번째 단계를 거쳐 결정되는데 그 세번째가 '시복(Beautification)'이다.

그리고 시복의 단계를 거쳐 마지막 단계가 '시성'으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성인(Saint)으로 추대하여 최대의 존경심을 표하는 것이다.

갈릴리 출신 베드로도 세인트 피터요, 로마에서 순교를 당한 바울도 세인트 폴이다.

성인으로 추대될 경우 베드로나 바울과 같이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니 개인적으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미 그 성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130명이나 된다.

1984년 한국 천주교 설립 200주년을 맞아, 교황 바오로 2세가 내한하여 한국 순교 복자 103위를 시성한 것이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2가지 이상의 기적을 행하였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지만 순교자에겐 기적심사는 면제된다는 새로운 법에 따라 기적 심사 없이 이들은 성인이 되었다.

이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에서 시성식을 가진 것은 아비뇽 교황 시대를 제외하고 교회 사상 처음으로 교황청 밖에서 열린 시성식으로도 유명하다.

김대건 신부가 포함된 이들 103위는 한국에 정식으로 천주교회가 세워진 이후에 생긴 신자들이다.

그런데 지난 16일 광화문에서 시복된 순교자들은 천주교회가 처음 세워진 1836년 이전에 천주교회에 귀의했다 발각되어 순교당한 사람들이다.

명단을 살펴보면 중국인 선교사 주문모 신부를 제외하고 모두 평신도들이다.

계급사회였던 조선에서 사람취급 받지 못하고 살았던 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백정출신 황일광, 궁중나인 강경복, 관아아전 박성근이 그들이다.

심지어 이름없이 살았던 무명의 여성들도 여럿 있다.

조선시대 서민의 아녀자를 부르는 말이 '조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최조이, 이조이, 최조이란 사람들도 복자(福者)에 추대되었다.

정약용의 형인 정약종도 이번에 복자가 되었다.

또 양반가문의 윤지충은 한국천주교에서 최초로 참수형을 당한 인물로 유교식 제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순교를 당한 후 이번에 복자가 된것이다.

대부분의 천민들은 양반들이 자신들을 동등하게 대해주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참으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그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데 두려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천주교회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특히 이번 시복식이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역사가 기억하는 영웅들이지만 이름 없던 천주교 신자들이 두 영웅들과 함께 역사의 주인공으로 선포된 것이라는 상징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시복은 일반적으로 처음부터 보통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지역교회 준비작업에 10년, 교황청 심사가 10년이 소요된다고 알려져있다.

이번 복자로 추대되는 시복식의 주인공들은 대개 1700년 대에 살았던 조선시대 사람들이다.

그들의 위대한 신앙의 발자취를 더듬어 수백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복자로서 인정을 하고 그 높은 신앙을 추앙하여 교황까지 참석한 가운데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시성식이 열린 것이다.

그럼 개신교로 돌아와 생각해 보자.

천주교회에서는 복 있는 자로 인정 받는데 세상을 떠난 후 수백년이 걸린다.
그러니까'축복후불제'라고 보면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복을 너무 성급하게 받아 버리겠다고 애쓴다.

더구나 개신교는 죽어서 복 받는 일에 별로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렇지 않고서야 살아있을때 저렇게 복을 달라고 애원도 하고 간청도하고 때로는 도가 지나쳐서 하나님을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태세이다.

궁중나인들이나 백정과 같은 당시 천민들도 신앙절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지금 복자로 추대 받고 선포된 것이다.

지금이 조선말기 천주교 박해시대가 아니라서 우리들의 신앙절개를 요구하는데는 아무데도 없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대로 무한경쟁 물질주의사회에서 우리의 신앙절개를 꺾어보겠다는 유혹은 더욱 충만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신앙절개보다는 우선 복부터 받고 보자는 축복지상주의가 판치는 개신교에서는 시복식이나 시성식은 웃기는 형식주의 혹은 전례주의로 여겨질수도 있다.

이번 시복식을 바라보며 우리 개신교는 천국에서 받을 상이 있다면 죽기전에 왕창 미리 베풀어 주기를 간절하게 떼를 쓰는 '축복 선불제'를 하나님께 강요해 오지 않았는지 반성해 봐야 겠다.

기름기가 절절 흐르는 무슨 형통의 신학, 번영의 신학, 삼박자 축복 같은게 사실 축복선불제 위장품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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