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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내 딸 친구의 결혼식을 주례했다. 

조촐하지만 단란한 분위기의 가든 결혼식이었다. 

성혼을 선포하고 성경위에 신랑신부가 손을 얹고 축복 기도하는 순서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으로 된 인쇄 성경보다는 내 호주머니 속 스마트 폰에 앱으로 다운로드 되어 있는 디지털 성경을 들이대고 전화기 위에 손을 얹고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면 하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디지털 성경이 문자를 담아 전달하는 기능적인 면에서 종이 성경과 다를 바가 없긴 하지만 성별된 책으로서 경전이란 인상을 심어주기에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럼 예배당 앞자리 주님의 테이블 위에 보통 2개의 촛대와 함께 올려놓는 종이 성경도 치우고 거기다 아이패드 하나 갔다 놓고 “하나님, 이젠 디지털 시대입니다. 

변화하는 세상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디지털 성경을 올려놓겠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시대를 앞서가는 예언자라고 하나님이 기뻐하셨을까?

최근 바이블 게이트웨이가 디지털 성경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인 10명중 6명은 모바일 기기로 보는 디지털 성경을 정치 혹은 사법적인 맹세를 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5천여명의 미국인을 상대로 온라인 조사를 해 봤더니 아직은 인쇄된 종이 성경을 사용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예컨대 1월중에 열리는 미국 대통령 취임식 때 워싱턴DC의 그 혹한 속에 종이 성경까지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니 차라리 대통령의 외투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그 위에 손을 얹고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을 경우 10명 중 6명이 “그건 아니네요!” 라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슨 공식적인 서약이나 맹세를 할 때 아이패드나 셀폰에 내장된 디지털 성경도 인쇄된 성경처럼 동일한 권위를 갖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5천여 명 응답자 가운데서 57%란 대다수가 “노!”라고 대답했다. 

이들은 오직 종이 성경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디지털이던 인쇄 성경이던 두 개다 오케이 한 사람들은 1/4 수준인 22%로 조사되었다.

목사님이 주일예배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갈 때 인쇄성경 대신 아이패드를 들고 올라가 다운받은 성경본문을 열고 유창하게 설교를 시작했다면 “앞서가는 최첨단의 우리 목사님 최고”란 긍정적 반응이 다수일까? 아니면 “영성의 깊이를 찾기보다는 너무 디지털 기기에만 약삭빠른 우리 목사님”이란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일까?

목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 활용 설교준비, 유튜브에 설교 동영상 업로드, 트위터 심방, 스마트 폰 이용 큐티 자료 전달, 찬양대 악보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등등 디지털 기기의 도움을 받는 일은 많아지고 있다. 

실용적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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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디지털과 인터넷 미디어의 과잉으로 오히려 ‘디지털 위험사회(digital risk society)’에 직면해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을 귀담아 들을 때도 되었다.

지난 주 LA 동부에 있는 한 어린소녀가 부모들과 함께 봄 방학 여행을 떠난다는 말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도둑들이 트럭을 끌고 그 빈 집에 찾아가 기둥뿌리만 남기고 모든 것을 훔쳐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게 바로 과잉연결(hyper-connected) 시대의 역기능이 아니겠는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온라인상에서의 사회 관계망 형성과 그것의 유지 발전의 과정은 사람들에게 디지털 피로감을 느끼게 해서 결국 페이스 북 등으로부터 탈퇴를 선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도 듣고 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으면 네트웍에 접속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기고 그 욕구가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 법이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 마다 신호등은 뒷전이고 전화기에 코를 박고 앞으로만 직진한다. 

지하철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한결같이 손가락을 놀려 댄다. 

식당에 모여 앉은 사람들도 제각기 밥그릇 옆에 전화기를 열어놓고 다른세상과 무엇인가를 주고 받는다. 

마치 무대 위의 무언극을 보는 것 같다. 이게 디지털 시대가 비춰주는 피곤한 군상들이요, 우리들의 자화상이 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스마트폰이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하다는 의미로 코케인의 일종인 ‘크랙’과 블랙베리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크랙베리(crackberry)란 말이 나왔고 휴대전화가 없는 상태를 두려워하는 노모포비아(nomophobia)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인간이 최첨단의 이기라고 만들어 놓은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들이 잘못하면 사이버 세상을 악에 물들게 하고 중독과 정보의 남용으로 야기되는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이제 교회는 심각하게 염려할 때가 된 것이다.

종이로 된 인쇄성경의 권위가 디지털 성경의 편리함을 훨씬 앞서고 있는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아직은 종이가 대세다. 

지난해 종이잡지를 폐간한 뒤 인터넷 판만 선언했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일 년 만에 다시 종이잡지 복간을 결정한 것도 디지털 만능주의 환상에 일침을 가하는 따끔한 충격이 되고 있다.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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