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 목사

 

 지난 4월 9일은 독일 디트리히 본헤퍼 목사가 사형장의 이슬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저서나 어록을 통해 지금도 깊은 영적 울림과 도전을 주고 있는 훌륭하신 목사님.

그런데 이 분을 놓고 자기 입맛대로 울겨먹는 경우가 많다.

 좌파 목사도 그렇고 우파 목사도 그렇다.

 좌우파도 아닌 보통 설교자들도 그렇다.

행동하는 신앙, 온 몸으로 나치 독재에 저항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본헤퍼는 누구인가? 

17세에 튀빙겐 대학에 입학했고 21세에 베를린대학에서 신학박사를 받고 24세에 교수자격을 얻었으니 그야말로 천재 신학자였다.

 죄에 대해 회개 없이 설교와 기도만으로 면죄와 구원이 가능하다고 믿는 독일 교회를 '값싼 교회'라고 비판 했다.

 히틀러의 하수인으로 변해가던 독일교회를 비판하며 목사의 신분으로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한 사람이었다.

나치 반대 운동을 하다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 들렀을 때 교수였던 라인홀드 니버가 미국에 남아 학문적 성취를 이루라고 권면했건만 그 유혹을 뿌리치고 독일로 돌아가 결국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이 집행되던 날 새벽, 악명 높은 독일 중부 부켄발트 수용소에서 간수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본헤퍼는 감방에 남아있는 동료들을 둘러보며 이런 말을 남겼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나에겐 삶의 시작입니다(This is the end for me, the beginning of life)."

그의 39년 짧은 생애 자체가 바로 웅장한 믿음의 서사시였고 순교의 드라마였다.

 본헤퍼가 남긴 무수한 명언 중에 지금도 회자되는 대표적인 세 가지가 있다.

"악을 보고도 침묵 하는 게 악이다." 

"미친 운전자가 행인들을 치고 질주할 때 목사는 사상자의 장례를 돌보는 것보다 핸들을 뺏어야 한다." 

"실천은 생각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책임질 준비를 하는 데서 나온다."

본헤퍼는 침묵을 악이라 했다.

 히틀러의 나치독재에 저항하면서 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도 적용되는 말인가? 

내 생각은 그렇소이다.

 악을 보면 침묵하지 말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라는 말씀은 결코 시대와 국경으로 제한받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게 고민이요 슬픔이다.

본헤퍼는 신앙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을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지 않았다.

 우리는 미국이란 나라가 법으로 명시해 놓은 정교분리 원칙의 아주 충실한 추종자들로 살고 있다.

 정치영역에 목사가 시비를 걸면 우선 법의 제재를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시절 강단에서 트럼프를 비판했다고 그 교회에다 세금폭탄을 때리겠다고 위협 당한 일도 있었다.

 정치는 정치고 교회는 교회이니 서로 대들거나 싸우지 말고 냉정하게 제 자리를 지키자는 정치 무관심 혹은 정치 냉소주의를 초래한 것이 정교분리 원칙이다.

그러니까 정치적 불의나 악을 보고도 당연히 말해야 할 것을 그냥 가슴에 쓸어 담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신앙인의 묵시적인 덕목인양 굳어져 버린 슬픈 현실이 되었다.

나는 한국의 전광훈 목사를 만난 적이 없다.

 가끔 유튜브 쇼츠(Shorts)를 넘기다보면 저절로 그분이 등장하고 거침없이 쌍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무에게나 이놈 저놈이다.

 그의 '거친 입술'에 눈살을 찌푸린 적이 여러번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높이 사야 한다.

 그는 침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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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이요 거짓이라 생각하면 고래고래 목청을 높여 저항한다.

 감방에 드나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좌파정권의 서슬이 시퍼런 탄압에도 굽히지 않고 광화문 태극기 시민운동을 정착시킨 장본인이다.

 더구나 교회와 공산주의와는 결코 함께 갈수 없다는 신념만은 철두철미해 보인다.

나는 전광훈 목사의 열성 지지자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다.

 다만 정치와 신앙은 갈라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이분법을 핑계 삼아 공산주의에 침묵하거나 악을 선동으로 뒤집는 거짓을 목도하면서도 굳게 입을 닫고 있는 목회자들을 비웃고 싶은 것이다.

침묵은 악이라고 설파한 본헤퍼 목사님의 순교일인 지난 4월 9일, 문득 총선을 치르고 있는 한국교회가 자꾸 내 머릿속에 어른댔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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