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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쾌 장로

 

 

열흘간의 한국방문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해보라면 기독교인들이 지난 10여 년 전에 비해 사회의 많은 비판을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은 한국사회가 기독교인들에게 바랐던 만큼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170여 개국에 미국 다음으로 해외선교사들을 파견하며 세계선교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
4천5백만 명의 한국인중 한때 1천만 명을 육박했던 기독교인.
밤에는 붉은 십자가들이 명멸하는 서울거리와 골목들.
복음주의 기독교의 중심지로 두드러졌던 한국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빠른 변화로 현재의 한국 사회는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한국 교계를 대표하는 한기총 사태와 일부 교단의 지리한 싸움, 대형교회의 비리 등이 불거져나올 때마다 세계 최고로 발달한 SNS를 타고 네티즌들 사이에 퍼져나가는 의혹과 추측들.
여기에 걸려들면 그 어느 누구도 살아남기 힘든 것이 한국사회의 현재 현상입니다.
해명도 변명도 나오지 전에 그 대상이 된 단체나 개인은 이미 사경을 헤매게 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사회의 쏠림현상이라고나 할까요?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의 허위사실유포로도 사회는 피폐해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에 대한 불신은 더욱 그런 것 같았습니다.
왜일까요?
그래도 기독교인들은 다를 줄 알았다는 사회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사회학자들은 말하더군요.
맞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사회가 아무리 피폐하여도 당연히 그 삶이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 다르기는커녕 아예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美國에 살면서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서울시의 학생인권조례가 그 하나의 예일 것입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그 내용들을 보면 참으로 기가 찹니다.
동성애가 허용되고 어린 학생들의 정치참여가 허용되며 학교에서의 체벌행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동성애가 금지됨은 물론 “쳐죽이라”는 명령까지 있습니다.
일반인들이야 그에 대한 찬반이 분분하다 할지라도 기독교계에서는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의 정치참여 반대, 혹은 조용히 있는 것이 “장땡”이라는 구실 하에 사회의 이런 현상들에 대해 교회가 입을 열지 못한다면 교회의 존재 이유가 의심스럽다 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론만이 아닌 행동강령이 아니던가요?
사회는 바로 이런 점을 들며 교계를 질타하고 교계의 패거리 싸움에 비난을 퍼붓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내세우면서도 사회의 병들어가는 현상들에 입을 다물고만 있다면 한국사회와 교회는 함께 무너져 내려갈 것이라는 위험스런 상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바로서야 사회가 바로서고 사회가 바로서야 국가가 바로 선다는 얘기는 말씀으로만 하는 설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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