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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셉 목사

 

2차 세계대전은 유례가 없는 잔혹한 역사를 남겼다. 바로 홀로코스트였다. 한 민족에 대한 무차별적 말살은 반인륜적 사건이었다. 홀로코스트는 당시 유럽 거주 유대인들에게는 기억조차 싫을 만큼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낳았다.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이로 인해 이들이 살 수 있는 땅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유엔의 가장 큰 숙제였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다른 서방 국가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으로 결국 영국령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설립하는 것을 허락하고 영토 분할령을 제안했다. 그것이 1947년 분할안이었다. 하지만 이 분할안 역시 유대인들에게는 가혹한 것이었다. 6대 4의 비율로 유대인에게 더 큰 부분을 할애했다 해도 대부분 비옥한 영토는 아랍인들에게 돌아가고 사막이 전부인 네게브와 해안가 일부만이 유대인에게 주어졌다. 더구나 예루살렘과 중부 지역은 여전히 국제통치령 안에 두었다.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이었던 벤구리온은 그것만이라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결국 1948년 5월 14일 현대 국가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독립하게 됐다.

아랍 국가들은 이런 유엔 결정에 찬성하지 않았다. 영국이 떠난다면 그 땅에 자신들이 원하는 국가를 세우고 지중해를 차지해 또 다른 힘을 키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유대인들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전면에 내세워 유엔의 팔레스타인 내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 설립을 반대했다.

1948년 5월 15일 아랍의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4개국 연합은 2차 세계대전의 무기와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토를 침범했다. 그렇게 1차 중동 전쟁이 시작됐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이 본격화됐다. 이 분쟁의 역사는 이후 75년 동안 4차례의 중동 전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대부분 중동 전쟁은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이 아닌 중동 국가들과의 전쟁이었다. 팔레스타인은 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끼었을 뿐이다.

팔레스타인을 앞세운 아랍 국가들은 여전히 현재에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대우에 차별을 둔다. 그들을 형제 국가라든지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자라고 칭송은 하지만, 결국 이들에 대해 차별하고 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이런 차별에 대한 분노와 원인을 이스라엘에 퍼붓고 있다. 여전히 그들은 이스라엘이 침략해 그들 땅을 빼앗았다고 생각하고 투쟁한다.

그러나 여기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이스라엘이 세워진 지 72년이 됐다. 그 사이 4번의 큰 전쟁을 치르고 작은 국지전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가장 진보하고 발전한 국가가 됐다.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내에서 혹은 이스라엘에서 제공한 공장과 일터에서 일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이유가 된다. 따라서 양측간 분쟁이라도 생기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되고 경제 활동에 타격을 받게 된다. 이스라엘은 또 어떤가. 팔레스타인의 노동력이 없다면 인력시장의 수급이 안 돼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서 영향을 받는다. 서로 작은 공동체이며 국가 체제이기에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빼앗긴 것과 뺏긴 것이 있기에 원수가 될 수밖에 없지만 그 원수가 누구보다 가까운 이웃이라는 점 또한 사실이다. 현재의 분쟁은 과거 분쟁들과는 또 다른 양상이다. 과거엔 영토와 생존에 대한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각자의 기득권 다툼이다. 정치적으로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을 두고 싸우고 있다. 승자 없는 싸움이다.

이번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쌓아온 분노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하마스는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게 됐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더이상 아랍 국가들 사이에 주된 이슈가 아닌 것을 보면서 분노했다. 땅을 뺏겼다는 왜곡된 역사관에서 시작된 이들의 투쟁은 결국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고 말았다. 과거 아랍 국가들이 애꿎은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일으키고 목숨을 빼앗으면서 자신의 정의를 관철한 것처럼, 하마스는 이스라엘 주민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내세워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아내게 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이번 사태는 자신들의 역사 속에 나타난 또 다른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단순히 전쟁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유대주의 정서가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대인 박해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양측의 피해를 단지 숫자로만 보게 되는 현실은 우리가 생명의 무게를 너무나 가볍게 취급하게 만든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현 상황은 옛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이며 공포이기도 하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분쟁이 사치일 수 있다. 아침 일찍 예루살렘에서 일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베들레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분쟁은 불편함이다. 이들은 검문소의 삼엄한 검문을 거쳐야 하고 이로 인해 사업장에 지각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직원이 제시간에 출근하지 못하니 그날 일거리와 작업 처리가 늦어진다. 정치인들과 국가 간 기득권 싸움에 성경의 땅에 사는 보통 사람들은 지쳐간다.

 

오늘도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긴장된 눈으로 서로 마주하고 있다. 분쟁 이면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고 그들의 삶이 보인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뉴스 속 분쟁은 어쩌면 너무나 소모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면서 이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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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 다비드 벤구리온이 1948년 5월 14일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국가의 독립을 선포하고 있다. 벤구리온 수상 위쪽 대형 액자 사진은 시오니즘 창시자 테오도어 헤르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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