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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중 목사

(주안장로교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은 우리 마음의 고향이요 천국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소중한 안식처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안식을 누린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적잖은 이들이 가정에서 천국의 안식을 맛보기보단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가족 간 갈등과 미움, 성적 타락과 동성애 등으로 인해 파괴된 가정 안에서 여러 사람이 고통을 경험한다. 

오늘 우리에겐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누렸던 최초의 가정, 참된 안식처의 회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천국의 그림자인 ‘에덴의 가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

구약 룻기에서 에덴의 가정을 회복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먼저 가족 구성원이 ‘아가페’의 사랑으로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 

룻기는 이방 땅으로 갔다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가 이방인 며느리 룻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야기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나오미가 맞이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했다. 이때 룻은 이삭을 주워와 가족 끼니를 챙겼다. 

하나님의 섭리로 룻은 나오미의 친인척인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된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기업을 무를 자’(레 25:23~25, 47~49)였다. 

이 사실을 안 나오미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며느리를 보아스와 재혼시킨다는 결심이다.(룻 3:1)

이 장면을 좀 더 깊이 생각해보자. 

이때 나오미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룻 1:21) 

나이가 들어 밭에 나가 일할 힘도 없어 룻이 주워온 이삭을 먹으며 겨우 사는 형편이었다. 

이런 가운데 며느리마저 시집을 가면 나오미는 살길이 막막해진다. 

그런데도 나오미는 자신의 형편과 미래보다는 룻의 처지를 먼저 생각한다. 

며느리가 “안식할 곳”(룻 3:1), 즉 ‘새로운 가정’을 마련해 줄 계획을 우선한다. 

이는 당시 나오미의 유일한 생계수단이라 할 수 있는 며느리의 노동력을 포기한 것이다. 

그야말로 ‘자기희생적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안식을 경험할 수 있는 에덴의 가정을 꾸리려면 구성원이 이기심을 내려놓고 자기희생적 사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오늘날 여러 가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상처, 비극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가족 구성원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 삶을 살고 있기 때문 아닌가. 

대개 부모님과 아내는 가정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을 베푼다. 

남편과 자녀는 주기보다는 받기에 익숙하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평하는 경우도 적잖다. 

심지어 일부 자녀는 부모에게 “내게 해 준 게 무엇이 있느냐”고 대들기도 한다. 

이런 가정에서 어떻게 에덴을 경험할 수 있겠는가.

가족 구성원이 서로 먼저 사랑하고 양보한다면, 그래서 “나는 우리 집에서 사랑받고 있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가정이라면 누구든 가정에서 진정한 안식을 얻을 수 있다. 

가정을 떠올릴 때 “내게 정말 관심과 사랑을 갖고 내 인격을 존중해주면서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부모님이 계셔” “나를 위해 자기를 전적으로 희생하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어” “우리 집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남편이 있어”라는 마음이 드는가. 

그렇다면 매일 집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이 얼마나 즐겁고 복되겠는가. 

바로 이런 가정이 참으로 안식과 쉼이 있는 에덴의 그림자가 아니겠는가. 

가정 안에서 가족이 서로를 위해 자신을 기쁜 마음으로 내어주고 희생하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삶. 

이것이 믿는 이들이 가정에서 살아가야 할 선교적 삶이다. 

이런 가정에서 우리는 날마다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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