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포로 전격 석방 뒤엔 1만6000여명 개종 역사 있었다”


유엔군 군목·임한상 목사 등
목숨 걸고 예배·성경 공부 인도
6000여명 회심·2200여명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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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6월 18일부터 19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 중 포로가 된 북한 출신 병사 중 반공포로에 대해 석방을 단행했다. 반공포로들은 한국군 경비병의 묵인과 협조로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했다. 8개 포로수용소 3만5698명 가운데 2만7389명이 탈출했다. 당시 우리 국민은 포로들에게 음식과 숙소, 옷가지를 제공했고 집에 숨겨주기도 했다. 국제법상 전쟁 포로는 임의로 석방할 수 없음에도 이 대통령은 미국의 동의 없이 반공포로를 석방했다. 통일을 원하는 국민적 열망과는 정반대로 전쟁을 속히 끝내려는 미국에 압력을 넣어 미국과 거래하기 위함이었다.

일명 ‘반공포로 석방 사건’이다. 이 대통령은 앞서 6월 8일, 미국이 한국 정부 입장을 무시하고 북한과 중공을 상대로 포로교환 협정에 서명하자 이틀 뒤 군 수뇌들과 헌병 총사령관 원용덕 중장을 경무대로 부른다. 그리고 반공포로를 풀어주는 방안을 비밀리에 검토한다. 이후 6월 17일, 이 대통령은 원 중장에게 포로들의 즉각 석방을 명령한다. 다음 날 국군헌병대는 각 포로수용소 철망을 절단한다. 헌병들은 호주머니에 고춧가루와 모래를 넣어 뒀다가 달려드는 미군의 얼굴에 뿌리며 제지했다.

역사가 전하는 기록이다. 하지만 반공포로 석방 사건의 이면엔 기독교 선교 활동이 있었다. 김재동 서울 하늘교회 목사는 지난 14일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샬롬나비·상임대표 김영한 박사)이 개최한 워크숍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이 사건 배경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포로를 대상으로 한 선교 활동’을 꼽았다.

논문에서 김 목사는 “포로수용소 안에서의 선교를 통해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만 1만6000명이 넘는다”며 “기독교로 개종한 반공 기독교인 포로들은 송환을 막아달라고 이 대통령에게 애절하게 호소했다”고 말했다. 포로들이 강제송환을 거부한 데는 유엔군 군목이던 미국 북장로교 소속 해럴드 보켈(한국명 옥호열) 선교사와 그의 지시를 받아 포로수용소에서 선교활동을 펼친 임한상 김윤찬 강신정 임재수 박지서 남기종 강응무 등 한국인 목사들의 역할이 컸다. 김 목사는 “미국과 한국의 선교사들이 포로수용소를 순회하며 예배를 인도하고 성경 공부를 한 결과 포로들은 전쟁의 고난 속에서도 희망과 위로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공포로 개종 이야기는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가 앞서 2021년 한 기독 잡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도 알려졌다. 김 목사는 해당 내용을 이번 논문에 인용했다. 이 석좌교수는 “목숨 건 포로수용소 예배는 결국 선교의 기초가 됐고 그 결과 6000명의 인민군 포로가 회심했으며 2266명의 인민군 출신 포로가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또 642명의 포로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신학교에 입학하려 했다”며 “수용소 내 전도와 예배 인도로 인해 반공 기독교인 포로 수가 증가했고 이는 이 대통령이 반공포로 석방을 감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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