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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4시. 

발칸반도 마케도니아 국경도시 쉬라니쉬테역. 

이웃 국가 세르비아로 향하는 이 역 철길로 ‘유럽 난민’이 쉴 새 없이 들어왔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이 행렬은 내전을 피해 대탈주를 시작한 시리아 난민들이다.  


그 행렬 한가운데 김수길(58) 그리스 선교사가 있었다. 


긴 행렬 사이를 뛰어다니며 난민이 필요한 구호물품을 나눠준 지 한 달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한데 그가 한 여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역(驛) 임시 난민구호 막사 주변을 울면서 서성이는 여인이 아내의 하늘색 반코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선교사는 ‘설마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급해졌다.  


그는 여인에게 다가가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여인은 계속 울기만 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시리아 난민 중 하나가 “자식을 잃어버려서…”라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그들은 “당신 같은 동양 사람이 이 여인에게 옷을 벗어주고 갔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그제서야 안도했다. 


시리아 난민이었던 이 여인은 이틀 전 그리스-마케도니아 국경 젤레즈니흐카라는 곳에서 네 자녀를 놓쳤다. 


젤레즈니흐카 다리 위에 난민을 붙잡아 두고 통제하던 마케도니아 경찰과 밀려드는 난민이 뒤엉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경찰은 난민을 강제로 버스에 태워 이웃 국가 국경까지 이동시켰고 여인은 자식을 만나지 못한 채 이곳까지 왔다.  


김 선교사는 여인을 위해 마음 속 기도를 했다. 


‘주여, 저 여인은 죄가 없나이다. 구원하소서….’ 그는 한 경찰에게 여인이 꼭 네 자녀를 만날 수 있도록 부탁하고 아내 조숙희 선교사(55)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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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마케도니아-세르비아 국경 난민 임시 막사에서 자녀를 잃어버리고 울고 있는 시실리아를 김수길 선교사가 위로하고 있다.



여성 구호용품에 

이슬람 여인들 반색 


그 시각 조 선교사는 역 남쪽에서 이슬람 난민 여인들에게 무언가를 나눠주고 있었다. 

남성 난민들이 손을 내밀며 자신들도 달라고 했다. 


“온리 레이디.”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다며 물러났다. 차도르를 쓴 이슬람 여인들은 조 선교사의 ‘물품’을 받아 쥐고 안에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짧은 순간 얼굴이 환해졌다. 

너무나 기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내 물품을 감췄다. 

여성 생리대였다. 


조 선교사는 그 시리아 여인 시실리아(35)에게도 여성용품을 전달하려고 다가갔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녀 잃은 시실리아는 온 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연 이틀 폭우가 쏟아졌었다. 


시실리아는 그 빗속에서 뒤따라 온 난민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을까 빗속을 헤맨 것이다. 

조 선교사는 코트를 벗어 시실리아의 몸을 감쌌다. 


조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자식 넷을 키운 엄마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당신을 지켜줄 거야. 오 주여, 이 여인을 축복하소서. 축복하소서.”


 조 선교사는 경찰에 시실리아의 딱한 사정을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시실리아에게 건네준 코트는 부산의 어느 교회에서 받은 헌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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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숙희 선교사와 카테리니교회 성도 가족.


고급스럽고 색이 고와 조 선교사가 아껴 입었다. 


김수길·조숙희 선교사가 한국인 중 처음으로 ‘유럽 난민’ 구호 사역에 나선 것은 지난 8월 중순부터였다. 


그 무렵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80㎞ 지점 노비사드에서 ‘제21회 동유럽 한인선교사협의회 수련회’가 열렸다. 


동유럽 선교사 및 가족 250여명이 참석했다. 


부부는 자신들의 선교 거점인 그리스 북동부 테살로니키의 빛과소금선교센터를 출발해 마케도니아를 거쳐 노비사드를 오갔다. 


그 길에서 부부는 하나님 명령을 받았다. 


자신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주님께서 시키신 명령이었다. 


‘롸잇 나우’, 지금 당장 강도 만난 이웃을 구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등 발칸반도 국가마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리아 난민 행렬은 그 무렵 지구촌 뉴스가 됐다. 


남루한 행색의 난민들은 40도를 웃도는 동유럽의 날씨 속에서 물과 빵을 얻지 못한 채 기약 없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북아프리카 난민도 독일 및 북유럽에 정착코자 발칸반도를 관통했다.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구호활동 


그리고 8월 24일.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시리아 난민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하루 500∼600명이 국경을 넘던 난민이 급격히 불어 6000∼7000명에 달했다. 


그리스 등 각국 정부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직면, 마구잡이로 난민을 통제해 이웃 국가로 ‘패스’하기에 바빴다.  


부부는 센터로 돌아와 긴급구호에 나서기로 했다. 


모든 걱정은 온유하신 주님께 맡기기로 했다. 


그들은 선교비를 죄다 털어 물휴지, 수건, 여성용품 등을 샀다. 

밤길 이동의 안전을 위해 미니 손전등도 챙겼다. 


18년간 ‘데살로니가서’의 고장 테살로니키를 중심으로 집시 선교를 해온 그들이었다. 


무엇보다 부부는 어린이와 여성이 가장 고통받을 것으로 보고 그들이 필요한 기저귀, 여성용품 등을 기본으로 한 꾸러미를 수천개 만들었다. 


그리고 차에 싣고 센터에서 65㎞ 떨어진 국경 마을 에부조리로 갔다. 

에부조리는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를 구분하는 벌판에 불과했으나 난민 문제가 발생하면서 난민 진입을 막기 위한 철책이 놓였다. 


마케도니아는 장갑차까지 동원, 국경을 통제했다.  


이슬람 여인 “한국 선교사라는 것 알아”  


그리스 언론은 그리스 사회가 생각 못한 한국인 선교사의 구제를 집중 보도했다. 


무엇보다 6·25전쟁 당시 그리스군을 파병해 도왔던 한국에서 온 선교사가 자신들에게 골칫거리인 집시들과 함께 난민이 버리고 간 쓰레기 청소까지 하는 것에 놀랐다. 


현장을 취재하던 독일계 한 여기자는 여성용품까지 챙기는 한국 선교사의 꼼꼼함에 놀라 눈물을 흘리며 구호용품 구입에 써달라고 돈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여성용품을 받아쥔 한 이슬람 여성은 조 선교사에게 귀엣말로 “당신들이 한국 선교사라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고맙고 감사하다”며 “이 용품은 더 급한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에게 먼저 주었으면 좋겠다”며 다시 건네기도 했다. 


김 선교사 부부는 한 달여간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를 넘나들며 사랑을 실천했다. 

세 나라 국경을 오가는 거리와 비용도 상당했다. 


서울광염교회가 급히 나서준 것이 힘이 됐다. 


그들은 모이면 기도했고, 무사히 현장에 도착하면 또 기도했다.  


김수길 선교사는 “곧 겨울이 닥치는데 난민 행렬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아 걱정”이라면서 “난민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하심을 드러내실지 모르겠으나 강도 만나 쓰러진 이웃을 돕는 것은 분명 예수의 명령이므로 힘이 닿는 한 도울 생각”이라고 밝혔다. 


조숙희 선교사는 “전쟁은 어린이와 여성에게 더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서 “한국 교회가 이들을 위해 기도와 꼭 필요한 물품을 지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물품 후원 문의 070-8252-4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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