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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등반? 


난 등반은 고사하고 평생 암벽근처를 좋아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기를 쓰고 바위에 오르는 등반가들을 보면 밥 잘 먹고 왜 사서 저런 고생을 할까? 


딱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건 정말 ‘꼰대생각’이다.

매사를 쉽게 가려는 게으른 타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크고 작은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는 하이킹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정상에 오르는 묘미를 맛배기 정도로는 이해하게 되었다.


미국 와서 사는 것이 감사한 것 중 하나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접하며 살수 있다는 점이라고 나는 늘 생각해 오고 있다. 


그 산을 넘나들며 이민생활의 한숨과 절망을 주체할 수 있었다. 


첫돌이 지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 곳이 그 곳이다. 


그 산에서 캠핑을 하고 하이킹을 하고 그 산에서 낚시를 했다. 


우리 가정성장사는 그 산맥의 수많은 트레일 코스, 수많은 호수, 수많은 캠핑장에 마치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중심에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있다. 


죽기 전에 미국에서 보고 죽어야 할 3곳을 꼽으라면 난 뉴욕 맨하탄의 마천루, 옐로우스톤 팍, 그리고 요세미티를 꼽는다. 


그 요세미티 중에서도 압권은 단연 엘 캐피탄(El Capitan)이다.


미국에 온지 4년이 지나서 난 처음 그 엘 캐피탄을 대면했다. 


막 첫돌이 지난 아들을 태우고 레익 타호를 거쳐 시에라 네바다를 가로 지르며 여행할 때였다. 


요세미티 빌리지 입구에서 엘 캐피탄을 처음 보는 순간 그걸 위용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함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그랬다. 


“우와~”라고 놀라는 것도 잠시 잊게 만드는 요세미티의 상징인 엘 캐피탄은 화강암 단일암석으로는 세계 최대 크기다. 


그리고 암벽등반가들에겐 ‘성지’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지난 14일 그 바위를 손으로 기어오르는데 성공한 최초의 일이 벌어졌다. 


두 사람이었다.


토미 콜드웰(36)과 케빈 조거슨(30)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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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7일에 도전에 나선지 19일 만에 마침내 정상에 오른 것이다. 


세계는 흥분하여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주목했다. 


그리고 마침내 로프나 못도 없이 오직 맨손 등반으로 인간승리를 이뤄낸 이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엘 캐피탄의 높이는 3,000피트(914미터)다. 


쉽게 생각해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2배 높이,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두바이의 ‘버즈 칼리파’의 높이 2,717피트 보다도 높다.


이렇게 높은 엘 캐피탄 맨손 등반이란 세계 최초의 쾌거를 이루기까지 이들은 얼마나 많은 연습과 노력을 거듭한 것일까? 


2008년부터 시작하여 한번은 1/3지점에까지 오르다 악천후로 포기하고 한번은 발목을 삐는 바람에 포기하고 . . . 수많은 도전과 포기, 포기와 도전의 역사가 반복되었다.


특히 세 살 때 등산에 입문했다는 콜드웰은 2001년 전기 톱 사고를 만나 손가락 하나를 잃은 아홉 손가락 인생이다. 


암벽전문가에게 아홉 손가락은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또 2000년도엔 키르기스스탄에서 암벽 등반 중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조직에 붙잡혀 3주 간 인질생활을 하기도 했다. 


탈출에 성공은 했지만 자신이 감시병을 죽인 것 같다는 죄책감 때문에 실어증에 걸렸다가 1년 뒤 감시병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겨우 말을 할 수 있었다.


 인질로 붙잡혔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아홉손가락의 한계를 뛰어 넘어 그는 오히려 맨손등반에 도전한 것이다. 


그리고 가장 난코스로 알려진 ‘돈 월(Dawn Wall·새벽직벽)’을 선택했다.


뜨거운 햇볕을 피하려고 겨울을 택했고 손에 땀이 나는 대낮을 피해 조금씩 조금씩 정상에 도전한 것이다. 


두 사람은 물자 수송 팀과 영상 팀의 도움을 받아 공중에 매달린 텐트에서 수면과 식사 등 생존에 필요한 일을 모두 해결하면서 한 구간 한 구간을 정복해 갔다. 


함께 오르는 조거슨이 한 구간에서 11번이나 떨어지기도 했지만 콜드웰은 인내심을 갖고 그를 기다려 줬다. 


그래서 엘 캐피탄의 총 32 등반구간을 함께 정복하고 승리의 감격을 함께 나눴다.


콜드웰은 “역경에 부딪칠수록 내 안의 열정은 더욱 불타올랐다”고 말했고 등반 성공 후 그의 아내는 언론 인터뷰에서 “남편에게 손가락 한 개가 없어졌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을 만들어 낸 기회였다. 


그는 도전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조거슨은 이런 말을 했다. “모두에겐 자신만의 ‘돈 월’이 있다. 


오늘 우리의 등반성공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전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다.”

거대한 엘 캐피탄의 가장 어려운 난 코스 ‘돈 월’ . . . 오르는 것만이 선택인 그 새벽직벽은 누구에게나 있다. 


아홉 손가락도 올랐는데 쉽게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두려워 말고 그 불가능한 가능에 도전해 보자.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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