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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집안식구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래봐야 아내, 따로 살며 직장 다니는 아들, 학교근처에서 방 얻어 사는 딸, 딸랑 넷이다. 

동원 명령 집결지는 LA코리아타운, 때는 지난 토요일 오전이었다. 

목적은? 가족끼리 영화관람이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한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함께 보자고 언질을 주었기에 동원명령은 쉽게 이행되었다. 

코리아타운에는 한국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CGV란 극장이 있다. 한국영화도 영어 캡션이 붙어 나오기에 한국어를 모르는 아이들도 이 영화관을 즐겨 찾는다. 

미국의 보통 영화관과 비교해서 결코 빠지지 않는다.

한국의 현대사를 이해시켜주고 가족의 중요성이 강조된 영화라고 들었기에 다 큰 아이들이지만 나는 은근히 조국에 대한 ‘시청각 교재’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동원령을 내린 것이다. 

근데 아내는 걱정이었다. 

아이들이 “이게 무슨 영화냐”고 화를 내면 어쩌냐고 조금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영화관은 완전히 대한민국 노인정이었다.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60대인 내가 젊은이에 속하고 70~80대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온 어른도 있었다. 막상 영화가 시작되자 안심이 되었다. 

아이들이 영화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을 보니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었다. 아니 옆자리에 앉은 아내는 계속 우느라고 정신없었다.

이날 일가족 동원명령은 결코 헛수고가 아니라는 걸 영화가 끝나고 저녁을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흥남부두에서 피난길에 오르는 6.25 한국전쟁으로부터 시작되어 격변하는 현대사의 가시밭길을 가족을 등에 업은 한 가장이 어떻게 헤치며 걸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한 번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하고 가족만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한 아버지의 눈물 나는 이야기다.

흥남부두에서 막내 막순이를 놓치는 바람에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을 때 주인공 덕수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없으면 장남인 네가 가장인 거 알제? 야, 가족들 잘 지켜라.” 

아버지의 그 한마디 유언을 가슴에 묻고 아버지가 찾아가라는 부산 국제시장의 ‘꽃분이네’란 수입 잡화상을 찾아간다. 고모가 운영하는 그 잡화상에 더부살이를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부탁을 실천에 옮기는 고단하고 가난한 피난 생활을 시작한다. 

덕수는 어려서는 구두닦이, 커서는 파독광부, 월남전 참전 등으로 돈을 벌어 어머니와 동생 삼남매를 뒷바라지 했다. 

어릴 적부터 선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아버지가 언제 살아오실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 고모가 경영하던 가게를 직접 사들이기도 했다.

1983년 6월 KBS가 이산가족 찾기란 프로그램을 주관했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사건이었다. 

덕수는 여동생 막순이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오빠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가 KBS 카메라 앞에 섰다. 

연결된 곳은 미국 LA였다. 

화면에 비친 사람은 노란 피부의 동양인 중년 여성.

덕수는 흥남 항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줄사다리를 기어오르다가 떨어뜨린 막순이의 소매 끝 한 조각을 가지고 있었다. 

화면의 그녀는 그 소매 끝이 잘린 저고리를 보여 주었다. 

막순이가 분명했다. 울음을 터트리며 여동생을 부르는 덕수, 오열하며 오빠를 부르는 막순이, 화면에 비친 사람들 모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쳤다. CGV 극장의 관객들도 모두 울었다. 

이 영화는 덕수의 가족이 모두 한데 모이는 것으로 끝난다. 물론 LA에서 온 막순이네 가족까지.
영화가 끝나고 우리 가족은 가까운 한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아이들도 좋은 영화였다고 기분이 좋았다. 밥을 먹으며 난 아들에게 물었다. 

“넌 영화에서 무슨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지?” 

아들의 대답은 월남 전쟁터에서 주인공 덕수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에 “지금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란 말이라고 했다. 

아니, 아들은 내 마음을 커닝한 것일까? 아니면 나 듣기 좋으라고 립서비스를 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도 엄마, 아빠가 이민 와서 고생을 미리 해서 우리가 덜 고생하고 이 나라에서 뻗어 갈수 있으니까 감사하지요.” 

혹시 아들 자랑하는 팔불출로 비쳐 질까봐 망설이다가 아들이 한 말을 겸연쩍지만 그대로 옮겨 보는 것이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래 동원명령 내린 보람이 있구나”라고 말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국제시장이 어디 부산에만 있으랴? 미국에 와서 자녀들 잘 되기를 학수고대하며 여행도 없고, 저축도 없고 극장도 없고 오페라도 없고 샤넬이나 루이뷔통이 뭔 말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무수한 코리안 아메리칸들이 살아가는 곳이 국제시장이다. 

‘꽃분이네’는 없지만 우리들의 국제시장엔 세탁소, 리커스토어, 식당접시닦이, 웨이추레스, 페인트, 막노동 판이 있다. 

영어를 못해 쭈빗쭈빗 창피를 당한 때가 한두번이 아니어도 우리의 자식들이 먼 훗날 내 고생을 딛고 훨훨 새처럼 비상하는 날을 기대하며 우리는 국제시장을 살아오고 있지 않은가? 

가주의회로, 판사와 검사로, 훌륭한 영적 지도자로, 경제계의 거물로 날아오르는 우리들의 2세들을 보라.

그래서 국제시장은 미국 어디에도 있고, 주인공 덕수는 이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수많은 한인들의 얼굴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두고 ‘개발독재 시대의 찬미가’ 혹은 ‘꼰대영화’라는 보혁 논쟁 따위엔 걸려들 필요도 없다.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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