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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대 목사
<국제성서박물관장>

독일에서 목회할 당시 교인들과 함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한 적이 있다. 

첫 번째 성지순례여서 였는 지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때 우리를 안내하던 가이드가 성지순례는 제5복음서라는 말을 하였는데, 복음서가 기록하여 증언하고 있는 예수님의 생애를 2천년전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이적을 행하셨던 곳을 직접 방문하여 체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성서야외박물관(Bijbels Openluchtmusuem)은 독일 국경에서 멀지 않은 네덜란드 네이메헨(Nijmegen)이라는 도시에 위치해 있다. 

1990년대 독일에서 목회할 당시 로테르담에서 유럽지역 감리교 목회자 모임이 있어 차로 가던 도중에 들른 적이 있다. 

당시 넓은 땅에 이스라엘 성지의 여러 건물들과 가축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야외박물관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성서야외박물관은 1911년 A. 수이스(Suys, 1870-1941) 목사에 의해 세워졌다. 

그는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코스에 따른 건축물들을 종합적으로 세우면서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복음의 의미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16년에서 1918년 사이에 ‘작은 마을’과 ‘골고다 언덕’이 만들어 졌으며, 그리고 1930년대에 ‘회당’, ‘빌라도 궁전’, ‘산테드린’ 등이 완성되었다.

  입구로 들어서면 본관 건물이 있는데, 본래는 수이스 목사가 십자가 형태의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를 건축하려 하였던 것인데, 일부만 건축된 채 완공을 보지 못하였다. 

현재는 성서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본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대략 주전 150년에서 주후 150년 사이의 성서 시대의 다양한 건축물들을 접할 수 있다.  

성지야외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성서이다. 

성서는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고, 구약을 유대인들은 테낙(Tenach)이라고 부른다. 

테낙(Tenach)은 구약성서를 구성하고 있는 토라(Tora, 율법서), 느비임(Nebiim, 예언서), 케투빔(Ketubim, 성문서)의 첫 글자들을 딴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전 587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다. 

주전 538년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바벨론 포로민들로 하여금 자기 땅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귀환한 포로민 공동체들에 의해 성전이 다시 재건되면서 유대인 사회가 형성되었으며 에스라가 가져온 율법서가 공동체의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느 8장). 

그 이후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와 헬라 시대를 거쳐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과 로마의 갈등으로 인해 주후 70년 예루살렘 도시와 성전이 로마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버리고 만다. 

성지야외박물관에는 회당이 있고 그곳에는 오경 두루마리가 전시되어 있으며, 일곱 촛대로 된 성전의 등대인 메노라(Menora)도 볼 수 있다. 

로마의 지배 아래 있으면서 유대인 공동체 안에 새로운 종교가 형성되었는데, 나사렛 출신의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기독교였다.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와 로마에 의해 극심한 박해를 받았지만, 주후 50년에서 150년 사이에 신약성경들이 형성되었다. 

그중에 먼저 쓰이기 시작한 것들은 데살로니가전서를 비롯한 사도 바울의 서신들이며, 그 이후 복음서들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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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7년 네덜란드 성경

주후 125-150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요한복음서 이집트 파피루스 조각이 발견되었으며, 이곳에서 1477년에 출판된 네덜란드 성경을 볼 수 있다. 

사진은 그 성경의 창세기 첫 번째 장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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