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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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철 목사
<제자들교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새로운 그룹과 문화로 영향력이 재편성이 되는 현상을 신부족주의(neo-tribalism)라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의 저변에는 문제와 갈등이 깔려 있습니다.
지독한 경쟁 구조 즉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는 사회구조 때문에 학연과 지연 심지어 혈연도 무의미해진 겁니다.
경쟁만을 부추기는 사회적 풍토에서는 가슴 아프고 치명적인 문제가 일어납니다.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부족주의 문화 속에서 교회와 기독교가 살아남고 오히려 이끄는 위치를 점유하려면 전사가 아니라 지도자 양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좋은 지도자는 좋은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기기 위한 경쟁과 살아 남기위한 생존에만 길들여진 전사는 자기편을 만들므로 편을 가르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교회는 먼저 치유와 회복에 집중해야 합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병원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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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는 일반병동이 있고 호스피스 병동이 있습니다.
일반병동은 삶을 준비하지만 호스피스병동은 죽음을 준비합니다.
그래서 수술도 없고 위로만 있으며 독한 약도 주지 않고 피도 뽑지 않습니다.
그냥 진통제만 투여합니다.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고 고통을 없애는 것에 집중하므로 죽음을 앞둔 분들이 모여 있어도 고요하고 평안한 분위기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호스피스 병동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위로와 평안 기쁨 그리고 재미가 우선시되고 마음의 찔림이나 회개 혹은 개혁하고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습니다.
설교도 귀에 거슬리지 말아야 하고 예배도 오감을 만족시켜주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일정도 삶에 불편을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임종을 앞둔 분을 대하듯이 어렵거나 힘든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 하니 호스피스병동과 같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일반병동이어야 합니다.
아프다고 소리 질러도 찢어야 하고 독한 약으로 힘들어해도 눈 하나 꿈쩍 않고 투여해야 합니다.
전쟁터처럼 시끄럽고 때로는 저작거리처럼 난장판이어도 환자가 들어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감내하지 않으면 건강한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를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평안을 주러오지 않고 검을 주러 오셨다는 말씀을 흘려듣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설교를 듣는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삶에 칼을 대는 것입니다.
설교는 듣기 좋은 말을 듣는 시간이 아닙니다.
불편하고 심지어 짜증이 나는 말도 듣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위로와 평안을 넘어 책망과 회개가 흐르는 교회가 바람직한 교회입니다.
재미와 즐거움을 넘어 부담과 고통을 지어주는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종교 중에 기독교가 가장 무례한 것 같습니다.
최고이며 유일한 존재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교회는 이 시대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교회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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