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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초대받은 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75세의 권사님이 생신을 맞아 둘째 딸에게 생일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포장된 조그만 박스 하나를 주길래 무엇이 들어있을까 상자를 열었더니 놀랍게도 자동차 키가 한 세트 들어있었다고 한다.


75세의 친정 어머니 생일 선물로 근사하게 새 차를 뽑아 준 그야말로 ‘통큰 딸’이었다.


내가 무슨 차냐고 물었더니 ‘벤즈’라고 대답했다.


벤즈란 말에 나는 한번 더 입을 벌려 놀람을 표시했다. “벤즈요?” 값이 비싸기 때문이었다.


동갑의 남편 장로님이 옆에 계시다가 “여보, 벤즈가 아니고 벤자에요, 벤자.“ 그러니까 독일산 멀세데스 벤츠가 아니라 토요타에서 나온 벤자(Venza)라고 고쳐주셨다.


그랬더니 그 권사님의 대답이 명품이었다.


“벤자에서 마지막 A자 꼬리만 짜르면 벤즈에요, 벤즈. . . 토요타건 독일산이건 어쨌거나 나에게는 그게 벤즈이상 이랍니다.”


딸의 벤자 선물을 벤츠로 받으시는 그 권사님의 얼굴에서 이 세상 더 부러울게 없다는 만족과 기쁨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 장로님에게도 이 딸은 70세 생신 선물로 새 차 하나를 뽑아 주셨다고 한다.


흔히 미국에서 크는 자녀들은 되바라지고 이기적이라고 한꺼번에 싸잡아 비판하는데 어디 다 그럴 리가 있는가?


여기서 자란 사람들중에도 이런 자녀들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는가?
이 소리를 들으며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다.


요즘 ‘젠틀맨’이란 약간 저질스러운 노래로 다시 유튜브 조회수를 달구고 있는 ‘싸이’의 노래 가락처럼 “우리 자식 놈들은 이런 자녀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랑가 몰라!”


더 놀라운 사실은 이들 장로님 부부에겐 딸 만 여섯, 그래서 ‘딸 6공주’란 별명을 갖고 살아왔다고 한다.


자녀들 대부분은 남가주에 살고 있는데 형제 중 한 딸의 남편이 중병에 걸려서 오랜 동안을 병상에 누워있는데 형제들끼리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이 형제 집에 가서 주말을 함께 보내준다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형제애란 말인가?


결혼만 하면 남남처럼 왕래하기를 꺼려하는게 우리네 보통 가정들의 형제들인데 이 집 형제, 그것도 딸 여섯 명은 결혼 후에도 한결같이 우애가 좋아서 한 형제의 고통을 그런 식으로 분담하고 있다는 소리에 또 한번 감동이 밀려왔다.


아직도 아들 타령하는 집안이 가끔씩 있긴 하지만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유머가 있지 않은가?


또 아들을 낳으면 1촌, 대학가면 4촌, 군대갔다오면 8촌, 장가가면 사돈의 8촌, 애 낳으면 동포, 이민가면 해외동포란 우스개 소리가 있는 걸 보면 왜 그리 아들타령을 하는지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 장로님 부부는 처남이 목회하는 한 작은 교회를 출석하면서 7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은퇴는 고사하고 만년 시무장로가 되어 노인들을 밴에 모시고 교회당으로 오고 주일예배가 끝나면 다시 모셔다 드리는 ‘교회 운전사’ 노릇을 하고 있다.


손아래 처남이 담임목사로 있는 교회에서 이런 매형의 봉사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둘째딸이 사준 아직 새 차 냄새가 가시지도 않은 그 ‘벤즈’를 타고 처음 한 일도 교회 점심용 대형 국통을 싣고 교회당에 가는 일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날 점심 먹는 자리에서 ‘가족’이란 근사한 한 폭의 그림을 본 것이다.


그 건강한 가족사랑 한 가운데로 충만한 신앙의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모든 이민가정의 모습이 그 장로님 가정만 같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슬픔과 눈물, 절망과 상처를 끌어안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가정들이 훨씬 더 많다는데 우리의 아픔이 있다.


지난 화요일 저녁 콜로라도 라키스를 상대로 시원하게 승리 투수가 된 류현진 같은 아들하나만 있으면 팔자 고칠 것이라고 부러워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만큼만 던진다면 내년 자유계약 선수가 되었을 때 어쩌면 5년 계약에 1억 연봉을 받을 수도 있다고 예견되는 메이저 리그 신시내티의 추신수, 그런 아들 하나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이라고 황당한 환상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그런 부모들에게 자식들은 “왜 우리 부모는 빌 게이츠가 아닐까?” “우리 부모가 도날드 트럼프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한숨을 내쉬지 않을까?


하나님은 누군가에게는 조금 헐렁한 사이즈로, 누군가에게는 조금 째는 사이즈로 가정이란 옷을 입혀 주셨는지 모른다.


내 몸에 맞은 맞춤형으로 재단해 가는 것은 우리 몫이다. 너무 행복한 가정과 비교만 하지 말고 내 가정에 숨어있는 감춰진 행복을 찾아내는 ‘행복 파인더’가 되자.


그러는 순간 이미 내게 주신 것에 감사하여 함께 사는 가족들이 보석으로 느껴질 수 있다면 그건 주님께서 특별하게 제공하시는 가정의 달 ‘스페셜 은혜 패키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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