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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500주년을 앞두고 한국에선 ‘종교개혁 500주년 한국교회 슬로건’을 공모해 왔다. 


국민일보와 CBS가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달 15일부터 30일까지 보름동안 공모를 진행해 왔는데 총 559건의 작품이 공모되었다. 


아쉽게도 당선작은 나오지 않았지만 심사위원들은 응모된 슬로건의 일부 단어들을 조합해 나름대로 의미있는 슬로건을 도출해 냈다고 밝혔다. 


한국의 23개 교단이 공동으로 참여한 이번 공모전에서 도출된 슬로건은 거창하지도 않고 그럴듯한 철학적 분위기 따위는 완전 탈색되었다. 바로 “나부터”란 말이다.


그러니까 나부터 ''기도하겠습니다'', 나부터 ‘정직하겠습니다'', 나부터 ’난폭운전 하지 않겠습니다,'' 나부터 ‘술 취하지 않겠습니다’, 나부터 ‘교회세습 하지 않겠습니다’ 등의 다짐을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느닷없이 필이 꽂힌 것일까? 아니면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는 주님의 말씀에 호되게 감화감동을 받았기 때문일까? 


모처럼 한국교계가 전해준 상쾌한 뉴스였다.


나는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하시고 부활하신 성탄절과 부활절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교회 경축일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이라고 생각한다. 


종교개혁기념일은 매년 10월 31일이고 이날을 앞둔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키고 있다.


마르틴 루터가 불을 당긴 종교개혁은 사실 카톨릭 교회 개혁을 말하는 것이다. 

이 카톨릭 교회를 개혁하려는 몸부림과 저항의 산물이 개신교인 셈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기념일은 개신교 탄생기념일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만약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우리는 거룩한 홀리 바이블을 읽을 권리가 박탈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면죄부를 사기 위해 투잡, 쓰리 잡을 뛰면서 죽도록 고생을 하면서 돈을 모아야 했을 것이고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신부님을 찾아다니느라 정신없이 바빴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보혈을 상징하는 포도주는 냄새도 맡지 못하고 그냥 빵만 멀뚱멀뚱 받아먹는 성찬식에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카톨릭 교회에선 여전히 성찬 포도주는 사제의 것이지 일반 성도에겐 접근 금지 품목이다. 


둘 다 먹고 마시며 주님을 기념하라고 “클리얼리” 말씀하셨건만 빵만 주는 이유는 주님의 피가 땅에 떨어질까 봐 염려하는 화체설에서 기인한다. 


개신교에서 보면 참으로 웃기는 일이지만 알고 보면 종교개혁으로 포도주도 마실 수 있는 특혜가 허용되었으니 천만 다행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선행구원론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믿음구원론이란 진리가 만천하에 선포됨으로 기독교 역사의 무지몽매했던 암흑의 때를 털고 나와 새 시대를 열어가는 터닝포인트가 바로 종교개혁이었다.


미국의 탄생기념일은 7월4일 독립기념일이다. 


개신교 탄생기념일을 맞이하는 개신교인들은 미국인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독립기념일을 경축하는지를 바라보며 회개해야 한다. 


성조기로 세상을 도배하고 돈 아까운줄 모르고 불꽃놀이를 벌이면서 아메리칸이란 아이덴티티 하나로 순식간에 정신통일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종교개혁 기념주일을 너무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겨우 겨우, 아는 척 모르는 척, 아니 그냥 무시 작전으로 넘겨버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종교개혁 500주년, 평생에 한번 맞이할 이 500주년을 1년 앞두고 한국교회에선 슬로건을 결정하고 나름대로 의미있는 무브먼트를 전개할 모양이다. 그런데 우선 뽑아 놓은 슬로건이 낙제점은 아닌 것 같다. 


거창하게 정의와 개혁이 어떻고 평화, 사랑, 성장, 은혜, 미래 등등 개념적인 어휘들을 몽땅 빼 버리고 우선 “나부터”라고 외치고 나온 것이 맘에 드는 대목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나부터 개혁의 대상에 올리는 내면적 정화운동, 그러니까 개인의 심령과 행동의 변화를 먼저 들고 나온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이 썩고 부패했다고 질타하기 전에 나의 썩은 환부부터 도려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어야 한다.


 뼈아픈 자성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500주년이 다가오자 무슨 대목 만난 양 이 때를 이용해 자기 이름 팔아먹고 자기 과시를 일삼는 이들에게 전하노니 “제발 정신 차리세요. 종교개혁 500주년은 나부터 회개하고 변화되는 개인 부흥회”라고 슬로건이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네 탓 그만하고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들여다보는 회개운동이 개혁의 첫걸음 아니겠는가?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정치목사들이나 돈을 퍼부어 교단장이 되고 총회장이 되는 명예중독 목사님들, 감투라면 환장하는 목사님만 탓할 것이 아니라 나의 부정과 과욕부터 내려놓는 겸손한 자기반성을 통해 결코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개신교탄생기념일’을 맞이하자.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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