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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 때 쯤 LA 공항에서 코리아 타운으로 들어오면서 프리웨이가 아닌 로칼을 이용하여 운전을 하고 오다 엄청 헤맨 적이 있다. 


수천 명이 거리행진을 하느라 난데없이 길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거의 한 시간 이상을 이 알 수 없는 프로테스트 때문에 발이 묶여있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저렇게 거리를 가득 메워 행진 하고 있을까? 


그들이 흔들고 있는 빨강, 파랑, 노랑 색깔의 깃발이 정확하게 3등 분할된 것을 보니 독일, 프랑스, 혹은 멕시코 국기와 비슷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아르메니안 국기였다. 


거리를 메운 사람들도 아르메니안들이었다. 


그들은 아르메니안 대학살을 기념하기 위한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던 참이었다. 


그때까지 난 아르메니아에 별 관심도 없었고 대학살은 또 무슨 대학살? 


나의 부끄러운 무식을 포장하기 위해 급하게 그 학살의 전말을 찾아 허둥댄 적이 있다.

LA 북부 글렌데일은 ‘아르메니안들의 베벌리 힐스’로 알려져 있다. 


글렌데일 20만 인구가운데 1/3이 아르메니안들이다. 코리아타운 한인 식당의 파킹 어텐던트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아르메니안들이 많다. 


세기의 재판 ‘OJ 심슨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로버트 카다시안은 아르메니안계 변호사다. 

그의 딸 킴 카다시안은 패리스 힐튼 저리가라는 할리웃 가십 생산공장이다. 


이러고보면 아르메니안들은 우리에게 먼 나라 사람들이 아니다. 바로 가까운 이웃이다. 아르메니아는 어떤 나라인가? 


구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지금의 터키 동부 지역 아라랏 산 근방에 거주하면서 고도의 문명생활을 누려온 민족이다. 


또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밀라노 칙령을 내린 AD 313년 보다 훨씬 이전인 301년에 이미 국가적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세계 최초의 나라이기도 한다.


이들은 이슬람 국가인 인접국 터키, 이란, 이라크 등과 끝없는 전쟁을 벌이며 수많은 세월동안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거부하고 기독교를 지켜낸 민족이다. 그러니까 ‘뼈 속까지 크리스천’이 아르메니안들이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점도 있다. 


아르메니아 정교회는 이집트, 에디오피아, 시리아에 있었던 교회들처럼 AD 451년에 열린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 즉 '그리스도의 한 인성 안에는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이 연합되어 있다'는 그리스도의 신인양성론을 거부했다. 


그래서 이들은 반 칼케돈 교회가 되었고 결국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강조하는 단성론 교리를 갖고 있다는 게 우리와 다른 점이다.


아르메니아는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으로부터는 약 400년의 지배를 받았다. 


세계 1차 대전 중 오스만 제국이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을 때 아르메니아의 기독교인들은 러시아 편을 들었다. 오스만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던 때였다. 

그래서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의 분노를 샀다.

오스만 투르크는 1915년 수많은 아르메니안을 집단 사살했고 상당수는 시리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비참하게 죽어갔다. 이때 죽은 아르메니안 숫자가 무려 150만명에 이르렀다. 

즉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안 ‘인종학살’이었다. 거의 3백만에 달하던 아르메니안 인구 가운데 2/3가 이때 죽임을 당했다.

이 학살로 인해 고대로부터 살아온 땅과 가족, 재산을 잃고 아르메니안들은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다. 

현재 러시아에 200만 명, 미국에 100만 명을 비롯해 107개국에 모두 900만 명의 디아스포라 아르메니아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한 참후에 독일의 히틀러가 등장하여 유대인 인종학살에 나섰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무려 6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희생되었다.


이 유대인 학살에 묻히다시피 하여 아르메니안 학살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대량 학살을 알고 있으면서도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막기 위해 터키와의 협력이 절실했던 영국이나 미국은 전쟁 후 이 학살사건에 침묵을 지켜왔다.


오늘날의 터키는 그런 학살 자체가 없었다며 강력 부인하는 한편 오스만제국 국민들이 살상 당하는 과정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이 포함됐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메니안 대학살 100주년 기념미사를 통해 무분별하게 학살을 당한 아르메니아인들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즉각 가해자격인 터키는 이에 분노하여 교황이 대학살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에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전 세계의 아르메니안 디아스포라들은 대학살이 시작된 4월 24일을 매년 기념일로 지키며 수천명이 거리로 나와 평화시위를 벌인다. 


대학살에 침묵해 온 지구촌을 향하여, 또 터키의 사과와 보상을 외치며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들까지 거리는 아르메니안 천지가 된다.


이번 주 아르메니안들은 자신들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며 또 다시 거리로 나설 것이다. 


길도 막힐 것이다. 조금은 불편할 지라도 그들의 절규에 우리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학살자를 두둔하고 묵인해 온 인류의 부끄러운 역사를 함께 반성하면서.


글렌데일에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을 건립할 때 눈물겨운 식민지배 역사를 공감하고 있던 아르메시안계 시의원들이나 주민들이 적극 지지하고 나섰던 점도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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