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JPG


이러다가는 지구촌에 사람의 씨가 마르지 않을까 두려운 생각이 든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지긋지긋한 테러 때문에 하는 말이다.


부활주일인 지난 27일 파키스탄 도심의 어린이 공원에선 부활절 행사 중이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65명 이상이 숨졌다. 


부상자는 약 300여명으로 집계 되고 있다. 


인구의 97%가 이슬람인 파키스탄에서 기독교 최대 명절 아침을 겨냥하여 저지른 기독교에 대한 살인테러였다. 


대명천지 어린생명을 이렇게 죽이려고 작당한 악당들의 두뇌세포는 도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 질수 있단 말인가?


이보다 며칠 앞서 벨기에 브루셀에서 발생한 테러로 분위기가 뒤숭숭한 마당에 또 파키스탄에서 대형 테러 사건이 터진 것이다. 


브루셀 공항 아메리칸 항공 탑승장과 스타벅스 커피숍 두곳에서 일어난 자살폭탄테러로 33명이 사망하고 25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역시 이슬라믹 스테이트(IS)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파리테러와 이번 브루셀 테러는 미국 본토 공격의 리허설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쯤되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때문에 지구의 종말이 임박했다거나 IS 때문에 인류의 씨가 마를지도 모른다는 조금 과장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공격이 없는 날이 단 하루도 없게 되었다. 


최근 약 2주간의 테러일지를 종합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지난 3월 13일엔 아이보리 코스트의 휴양도시 그랜드 바쌈에서 알카에다 테러분자들의 총격으로 16명이 사망했다. 


14일엔 2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웨스트뱅크의 한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이스라엘 군인에게 총격을 가했다. 


15일엔 소말리아의 알카에다 소속 괴한들이 3명의 레드 크레센트 구호요원들을 납치했다. 


16일엔 2명의 여성이 나이제리아 한 모스크에서 자살폭탄을 터트려 24명이 사망했다. 


이날 공격은 IS의 한 분파인 보코하람이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17일엔 2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가 웨스트뱅크 아리엘에서 한 이스라엘 군인을 칼로 살해했다. 


줄줄이 사탕처럼 매일 매일 끊이지 않는 테러. . 마침내 22일엔 캘리포니아 샌버나디노 테러 이래 최대의 자살폭탄 테러가 브루셀 공항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공화당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트럼프의 입에서 국경 봉쇄, 무슬림입국금지란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쏟아져 나와도 별로 과격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도 9.11 테러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미국인들은 오히려 트럼프의 그런 막말에 안도감을 느끼며 백악관으로 가겠다는 그에게 지지표로 응답하고 있는 중이다. 


이슬라모포비아가 확산되는 것도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무슬림이라고 다 극단주의자가 아니고 이슬람 신자라고 모두 테러분자는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멀다시피 파리 목숨처럼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이 급기야 미국에 살고 있는 모든 무슬림들에게 옮겨 붙어 이들조차 옛날 유대인 강제수용소처럼 게토화 시켜야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 어쩌면 울컥 동의하고 싶어지는 심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를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역사적 훗날이 찾아올 수 있다는 전제하에 성급한 울분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비관주의에 빠질 때는 더욱 아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척 콜손은 그리스도인에게 비관주의는 죄라고 말했다. 


안식 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가 찾아갔던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까지가 비관주의였다. 


그리고 죽음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첫 번째 부활절 아침, 그 순간부터는 딴 세상이 열렸다. 


생명과 희망, 평화와 공평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율법주의의 폭력과 골고다의 죽음이 결코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를 이겨 낼 수 없고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악이 선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가 그 돌무덤에서 우리에게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우리에게 비관주의는 없다.


그러므로 IS, 알카에다, 탈레반, 보코하람 등으로 표현되는 우리 시대의 폭력과 죽음 앞에 우리가 맞서야 할 것은 무엇인가? 


비관주의도 아니고 보복으로 맞서는 일도 아닐 것이다. 


부활하셔서 여전히 인류역사의 지평을 열어 가시는 그분의 정의와 평화가 이 땅에 임하기를 소원하는 일이다. 


설마 IS로 인해 인류의 씨가 마를 때 까지, 그 때까지 기다리실 분은 아닐 테니까.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기획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