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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날드 트럼프의 식지 않는 인기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아이오아 코커스를 앞두고 말 펀치가 세다고 소문난 새라 페일린의 지지를 얻어낸 것도 모양새에 있어 트럼프에겐 유리하게 되었다. 


테드 크루즈의 추격에 긴장하는 것 같았지만 캐나다에서 태어난 크루즈는 절대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강공 드라이브 끝에 금방 그의 추격을 따돌리고 여전히 선두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엔 크리스천 대학교중 최대인 리버티 유니버시티의 제리 팔웰 총장의 따뜻한 환영을 받기도 했다. 


비록 그 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성경 이름가운데 하나를 잘못 발음하는 실수를 범했지만 그런 쪼잔한 실수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인들은 그에게 지지의 갈채를 보내고 있다.


트럼프는 복음주의 잣대로 보면 전혀 지지 대상이 아니다. 


우선 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 


돈을 많이 번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인물이지만 돈벌이 수단이 명예롭지 못했다. 


카지노로 돈을 벌고 투자회사를 통해 거부가 되었다. 


어디 정직하게 벌어서 떼 부자가 되는 게 쉽지 않지만 도박장으로 돈을 번 억만장자라면 복음주의가 환영할 인물은 아니다. 


교회는 다닌다고 하지만 개신교인인지 천주교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자신은 장로교인이라고 말하기는 한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 성경이라고 말하면서 좋아하는 성경구절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 


성찬식을 두고 “작은 와인과 작은 크래커”라고 말할 정도이니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말이 뻥으로 들린다. 


더구나 복음주의가 눈 여겨 보는 낙태문제, 동성애 잇슈 등에 관해서는 딱 부러진 견해도 없이 어영부영 갈지자 행보라고 한다.


그의 허풍은 하늘을 찌르기도 한다. 지난주엔 “내가 누군가를 총으로 쏜다 할지라고 나의 지지자들은 변치 않는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교만끼가 철철 흘러 넘친다.


무슬림들의 미국 입국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멕시코 이민자들을 모두 범죄자 취급하려 들고 대한민국은 미국에 무임승차하여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등 별의별 무식한 막말을 쏟아 내온 것만으로도 이미 복음주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견되었다.


그런데 결과는 정 반대. 트럼프는 복음주의 진영으로부터 42%의 지지를 얻어내고 있다. 


목사의 아들로서 기독교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테드 크루즈의 지지율 25%와 비교하면 그의 지지율은 놀라운 결과다. 


캐톨릭 신자인 젭 부시를 제외하고는 공화당 경선주자들은 하나같이 예수 잘 믿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다. 


복음주의 진영은 이들에겐 별로 눈길을 주지 않는다. 


막말, 쓴말, 고약한 말, 건방진 말을 마구 뱉아 내는 트럼프가 좋다는 것이다.


트럼프에 대한 복음주의 지지가 변치 않는 이유에 대해 ‘타임’지는 나름대로 워싱턴 정가에 대한 자신들의 절망감을 거침없이 토로해 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복음주의 진영을 포함하여 미국의 대다수 유권자들은 워싱턴에 대해 절망과 분노를 느낀다. 

완전히 고장 났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고장 난 미국 정치판을 뜯어고칠 자, 그는 바로 트럼프라고 믿고 있다는 것.


트럼프는 사실 연방 상하원, 혹은 주지사를 거치면서 정계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정객이 아니다. 


그는 정치를 잘 모른다. 정치적 제스처, 정치적 언어, 정치적 타당성 따위엔 관심 없다. 


그냥 직설적으로 쏟아내고 기분 나쁘면 금방 얼굴을 붉혀 삿대질하며 덤빈다. 


서민들은 도도하고 예의바른 워싱턴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깊지만 트럼프가 쏟아내는 막말 때문에 위로를 받는다.


 ‘위대한 미국을 다시한번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트럼프의 구호가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워싱턴 정가에서 잠꼬대처럼 흘러나오는 달콤한 말이 아니라 트럼프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걸고 지지율 1순위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워싱턴은 우리 같은 이민자들에겐 더욱 더 ‘멀고 먼 딴 세상’이다. 


이 나라 중산층이나 못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달 총기규제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눈물까지 흘렸다. 


이 나라 국민들은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 안다. 


샌티훅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억울한 죽음, 찰스톤 임마누엘 교회에서 성경공부 중 어이없는 증오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은 그리스도인들, 샌버나디노 카운티에서 벌어진 IS 추종 부부의 묻지마 살인으로 이 세상을 떠난 불쌍한 사람들. . . 미국이란 나라가 결국 총으로 망할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들 정도로 총기문제는 시급한 개혁과제다. 


이 나라가 총기 없는 나라가 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러나 워싱턴 정가는 그런 밑바닥 민심을 읽고 있는지 외면하고 있는지 대통령이 눈물로 호소한 총기 규제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어깃장을 부리는 꼬라지를 보고 분노하지 않을 국민들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워싱턴은 자꾸 고장 난 기계 취급을 당하고 그런 워싱턴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트럼프가 마냥 좋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가장 비기독교적인 대선 후보란 불명예를 안고 있는 트럼프가 보수주의와 기독교 복음주의 후원으로 오늘에 이른 거대한 미 공화당 대통령 경선 후보 1위, 그것도 복음주의 진영에서 부동의 최고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거래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미국 복음주의가 실실 맛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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