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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픽션 영화 ‘마션(Martian)’이 지난주 개봉 되자마자 박스 오피스 1등을 차지하며 화제를 낳고 있다. 


모처럼 집에 들른 아들이 극장엘 가자고 청하기에 “무슨 영화?” 했더니 사이언스 픽션이란다. 


“에이~ 난 가족코믹영화나 역사물을 좋아하지, 사이언스 픽션은 별론데!”라며 시큰둥했으나 ‘가족단체관람’에서 나만 제외될 수 없어 그냥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그런데 내 짐작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대단히 좋은 영화 A+였다.


같은 장르의 영화로 지난해 개봉된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가 있었지만 이 영화가 더 큰 감동이었다.


마션, 화성인인이란 뜻이다. 


그럼 화성에 사람이 산다고? 아니다. 


최근 겨우 소금물이 발견되었다고 떠들썩했던 바로 그 동네가 화성이다. 


그 화성을 탐색하기 위해 나선 미국의 우주인이 모래돌풍을 만나 우주선에서 격리되면서 화성에 내버려진 인생이 된 것이다. 


그런데 생존을 위해 화성에서 기적 같은 결투를 벌인다. 

그래서 그는 ‘마션’이 되었다.


이 영화는 리들리 스캇이 감독을 맡고 배우 매트 데이몬(Matt Damon)이 주연을 맡은 영화다. 


이미 2011년에 발표된 앤디 와이어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소설도 한때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바 있다고 한다. 


대부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촬영했고 요르단의 와디 럼이 화성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주인공은 마크 와트니(Mark Watney).


그는 화성 탐사선의 일원으로 화성에 갔던 우주인이었다.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다른 우주인들은 화성을 떠나 캄캄한 우주 속으로 날아갔고 죽은 줄 알았던 와트니는 폭풍 속에서 구사일생 살아남는다. 


그때부터 그는 화성의 로빈손 크루소가 되었다. 


무려 461일을 산소도 없는 그 적막한 불모지에서 생존을 위해 쟁투를 벌이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다.

생각해 보자.


화성은 지구와 가장 가깝게 접근했을 때의 거리가 3천5백만 마일,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 데는 무려 6개월이 걸린다. 


비행기가 아니라 로켓으로 가는 거리다. 


그런 별에 혼자 남아 생명을 부지하게 되었을 때 나 같으면 아마 스스로 겁에 질려 ‘공포사’ 했을 것이다.


그러나 와트니는 NASA가 화성탐사를 위해 베이스캠프처럼 만들어 놓은 해비타트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을 짜기 시작한다. 


태양열을 이용하여 전기가 들어오는 것은 다행이지만 식량은 금방 떨어질 위기였다. 


식물학을 전공했던 과학적 경험을 토대로 생존계획을 세워나간다. 


우선 비닐로 구조물을 밀봉한 후 전기로 수분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우주인들이 남기고 간 분비물과 흙을 섞어 농사의 기초가 되는 땅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감자 씨를 심었다.


감자 농사는 대 성공이었다. 


그렇게 그는 4년 동안 살아남을 생존전략을 짜고 차분하게 행동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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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내가 그토록 감동 만점이라고 즐겨봤던 ‘빠삐용’의 화성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트니는 절망하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며 흥얼대기도 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 속에서 감자로 연명하고 있었지만 그는 피어레스(fearless)였다.


결국 그의 생존소식은 나사의 레이다망에 잡히게 되었고 그를 두고 떠난 허미스란 우주선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에게 접근하여 도킹에 성공함으로 결국 지구란 HOME으로 귀환하다는 이야기.


이제 블랙 앵거스나 아웃백같은 스테이크하우스에서 감자를 먹을 때마다 나는 그 와트니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화성에서 감자를 키워 461일의 생존에 성공한 그의 꺾이지 않는 희망을 떠올릴 것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난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당신이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라. 마크 와트니는 이런 때 어찌 했을까? 라고….”


살아가는 것이 점점 팍팍해 지고 있다. 


바쁘기만 하지 여유도 없고 평화도 없다. 


싸움소리, 미움소리, 총소리, 한탄의 소리만 들리는 것 같다.


오레곤 주에선 지난주 9명의 커뮤니티 칼리지 재학생들이 정신 나간 학살범의 총탄에 맞아 꽃다운 청춘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크리스천만 골라서 ‘확인사살’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정말 지구를 떠나 고독한 마션으로 살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와트니는 결국 그 싸움과 미움이 판치는 지구란 HOME이 그리워 불굴의 생존의지를 불태우지 않았던가?


지지고 볶는 한이 있어도 마스(Mars)보다는 어스(Earth)가 아니겠는가?


화성에서 감자농사에 성공하는 와트니의 희망의 끈만 있다면 절망의 모래폭풍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도 감자 씨를 심어보자.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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