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큰나무 교회 박명룡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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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비인격체이다.” “동양인들은 인격적인 유일신을 거부한다.” “하나님을 인격체로 보는 기독교의 신관은 모순이며 우습다.”
“목사님, 하나님이 어떻게 인격체입니까. 비인격체 맞죠?” 필자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어느 신자가 한 말이다. 그는 목사님들이 하나님을 인격체로 표현하는 것이 못마땅해 열다섯 번이나 교회를 옮겼다고 한다.
필자의 교회에 온 것이 열여섯 번째였다. 자신이 하나님을 비인격체로 생각한 계기는 대학 시절 도올 김용옥 교수의 강의를 들은 것이었다고 했다. 도올은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격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도 올은 EBS 요한복음 강의에서 “동양인들은 인격적인 유일신을 거부한다”고 말했으며, ‘노자와 21세기’에서는 “하나님은 유일자라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허구적인 실체, 허상적인 인격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에 대한 우리의 반감은 지나치게 강조되는 인격성(personality)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도올은 하나님을 인격체로 보는 기독교의 신관을 모순으로 여기며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노자의 사상과 자사(子思)의 중용에 근거하여 신(God)은 비인격체로서 우주의 신령한 기운이 신이고, 유기체로서 천지(天地)가 신이며 ‘천지는 피도 눈물도 없이 가혹하고 잔인하다’고 한다. ‘천지는 잔인하기에 위대한 것이며 노자의 하나님은 은총의 하나님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도올은 하나님이 비인격체로서 우주 자체가 신이며, “하느님이 인격성을 유지하는 한 그것은 하느님일 수 없다”고 그의 책 ‘사랑하지 말자’에서 강조한다.
이와 같이 기독교의 신관은 잘못되었으며, 하나님이 비인격체라는 도올의 주장은 안티 기독교 세력에게 탄탄한 논리적 토대와 기독교 비판의 근거를 제시해 주고 있다.
그 러나 도올은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는 단지 ‘고대 중국인의 사상에 의하면 신은 비인격체이다. 따라서 그것에 근거할 때 기독교의 신관은 잘못된 것이다’는 단순한 논리의 틀 안에서 자기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그는 서로 다른 관점에 대한 이성적 분석이나 타당한 논리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궁극적 실재로서 하나님은 과연 인격체인가? 아니면 비인격체인 물질인가? 어느 것이 이 세상의 이치를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는가? 우리는 그 해답을 인격체와 비인격체의 차이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인격체와 비인격체는 어떻게 다른가? 우선 인격체는 자의식과 자기결정력을 가지고 있다. 인격체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며, 감정이 있기에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고통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인격은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과 나눌 수 있다.
그 러나 비인격체는 전혀 다르다. 비인격체인 짐승은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으며 본능에 의존해서만 산다. 동물은 자의식이 없다. 동물 중에서 ‘내가 누구인가?’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사는가?’라는 생각으로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는 것을 보았는가? 동물은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내가 참된 나인가 아닌가를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은 오직 인격이 있는 인간만이 가능하다.
그런데 동물보다 더 못한 비인격체가 있다. 그것은 생각이 없고, 감정도 없으며, 의사소통이 없고, 아름다움과 선함을 인식할 수 없는 물질들이다. 먼지 흙 바위 에너지 지구 태양계 은하계 우주 등이 모두 비인격체다.
우주 공간의 95% 이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라고 한다.
이런 물질체들에게는 자의식이 없고, 도덕성이 없으며, 자유의지가 없고, 감정도 없다. 바로 이런 것들이 비인격체인 물질인 것이다.
만일 세상을 만든 창조주가 이런 비인격체라면 그 신은 피도 눈물도 인정도 사랑도 희망도 완전히 결여된 무인격적인 돌덩어리와 같다.
그래서 도올은 그 비인격적 신에 대해 “천지는 잔인하다”라고 표현한다. 물리학자들에 의하면 “물리 과학의 모든 것은 수많은 양성자들, 중성자들, 그리고 전자들이다”고 한다.
이러한 입자들로 구성된 비인격체인 물리적 우주가 신이라면 이 우주에 무슨 희망과 아름다움, 사랑과 기쁨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신이 비인격적인 물질이라면 인격을 가진 인간에게 그 어떤 희망을 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다. 그 하나님은 사랑할 수 있고, 감정을 표현하며 의지적인 결단을 내리는 분이시다.
인간은 욕심 때문에 이기적으로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한 인격을 가졌기에 온전히 사랑하고 섬기며 자신을 기꺼이 우리에게 내어주신다.
우 리는 평소 누군가가 우리 자신을 잘 이해해 주고, 진심으로 믿어주고 사랑해 주기를 갈망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상대를 필요로 한다. 만일 하나님이 물질덩이라면 이런 것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이 인격적인 분이기에 이 세상에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시고, 타락한 인간을 살리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분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우리들에게 나누어주신다. 바로 이렇게 사랑하고 희생하는 분이 기독교의 하나님이다.
인간에게 있어 인격이란 본질적인 요소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격적인 존재일 때만이 인간의 삶에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인격으로 통할 때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는 완벽한 분과의 사귐이 가능하다. 우리는 평소 이런 분을 갈망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비인격체라는 도올의 주장은 이 세상의 이치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에 아무런 희망도 제시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에게 말을 거신다. 인격체 하나님과 깊은 사귐에 흠뻑 빠져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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