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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희 집사
(새크라맨토 한인장로교회)

 

못 해 본 것 보다는 못 가 본 곳이 거의 다라고 할 만큼 생활고가 적지 않았음을 오랜 이민생활이 대신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일주일에 6일은 생업에 매달리고 하루 남은 주일은 교회에 가야 하니 늘 맘은 굴뚝 같은데 실생활에선 주일 빼먹고 문화생활을 즐기려고 들로 산으로 박물관으로 신바람 나게 한번 즐겨 보질 못했다.
어쩌면 많은 이들의 이민생활이 나와 별로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집을 중심으로 이 세계적인 관광지인 S.F.에 가 볼만한 곳들은 엎어지면 코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못 가 본 형편이다. 
지금 계절은 나무들이 잎을 떨구어서 헐렁해진 가지들의 모습이 곧 한겨울을 나목으로 지내야 하는 일년의 끝자락에 와 있다.
지금까지 별 탈없이 지내온 시간은 주님의 은혜라 생각하는 반면에 난 내일을 또 모르기에 이제는 틈나는 대로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며 한 2년 전부터 실행에 옮기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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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타고 멀리 날아갈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은 아직도 나에게는 없다.
그렇지만 내 주위에서 할 수 있는 적은 것부터 하고 또 가 볼 것이다.
이맘때면 왠지 많은 인파 속에 휩싸이고 싶은 그런 맘의 분주함이 있다.
친구같이 팔짱 끼고 다닐 만큼의 성인이 된 딸이 있어서 참 좋다.
딸은 가끔 자기가 가본 식당으로 우릴 멋진 곳으로 안내하면서 자신 스스로는 생색도내고 뿌듯함을 느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밥값은 늘 엄마와 아빠의 몫이다. 대학에서 추수감사절 연휴로 집에 잠시 들린 딸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S.F. 다운타운 유니온 스퀘어에서 있는 크리스마스츄리 점등식을 같이 보러 가자고 제의했다. 대답은 예스였다.
주차의 지옥에서 벗어 나려고 공중버스를 타보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이다 싶어 그것을 택했다.
다운타운 한 중심에 서 있으니 바로 옆에 내가 살고 있는 다른 한 구석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별다른 곳도 있음을 한국을 떠나온 이래 처음 보았다.
대부분 젊은 층이라 활기가 넘쳐 보이기도 한다.
점등식이 오후 6시라 우린 눈요기라도 할 겸 해서 샤핑에 들어 같다.
직장과 교회가 다 인듯한 365일의 단순한 생활 속에서 어깨와 어깨가 부딪칠 만큼의 그 많은 사람들이 있는 도시의 한복판을 걸어 보는 것이 나로선 볼거리로 충분했다.
점등식이 있을 그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에 우리도 마음이 급해져 샤핑을 중지하고 좋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한 시간을 기다리는데 지루함을 몰랐다.
큰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캐롤과 인공 눈까지 휘날려 주기도 했다. 조금은 비로 인해 칙칙하고도 차가운 밤 기운을 없애줄 어느 단체에서 제공하는 공짜로 무한정 마실 수 있는 따끈한 커피와 그 향이 같이 할 수 있어서 더더욱 좋은 밤이었다.
점점 모여드는 인파는 어느새 유니온 스퀘어의 잔디를 다 덮고 사방의 차도까지 사람들이 점령하고 카운다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산인해로 일대장관을 이룬 그때 일 만 명쯤의 입을 통해 인파의 물결을 타고 점점 더 크게 들려온 노래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었다. 경건하고도 숙연한 모습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흐트러진 모습 하나 없이 한 나무를 응시하며 그 장소 그 시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를 택했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이 뜻밖의 일 때문에 주위를 둘러 보았다.
지휘자가 혹시라도 어디에 있는가 아니면 독창을 하는 가수가 있어 그를 따라 부르나 나의 눈은 빙글빙글 돌면서 그런 사람을 찾느라 바빴다.
그러나 그 해프닝은 그 자리에서 모두가 동시 자발적으로 지휘자 없이 몰려든 인파가 즉흥적으로 만들어 놓은 거대한 옥외 합창단이었다.
나는 전혀 이런 상상도 못하고 와서 합창단원의 한 사람으로 소리를 보탰다는 사실이 덤으로 얻은 행복한 순간이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계획에도 없었고 기대도 하지 않은 가운데 얻는 짜릿함. 심포니홀에서 듣는 메시야 합창의 소리도 있고 교회 안에서 성가대의 메시야곡도 들어 보았지만 지붕 없는 옥외에서 지휘자도 없이 무반주로 그 많은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부른 노래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카운다운에 들어가며 10-0를 외치는데 한껏 높아진 목청이 “0” 그 순간에 반짝하고 켜진 멋진 크리스마스츄리를 보면서 한꺼번에 토해내는 “와” 란 함성을 끝으로 도시 속에 모여든 사람들은 어디론가 자리를 뜨고 있었다. 30년 세월 보내면서 한번은 꼭 와서 보고 싶었든 크리스마스 점등식.
버스를 타고 도시 속으로 와서 잠시 외지인인양 많이 걸어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버스에 올랐다.
오늘 나의 bucket list 에서 작은 이 한가지를 지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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