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 목사>
오는 2월 3일을 ‘수퍼볼 선데이’라고 부른다. 수퍼볼이 열리는 날을 말함인데 그냥 ‘수퍼 선데이’라고도 한다.
미국의 TV 시청율 1위가 바로 수퍼볼이다. 공식적인 휴일로 정해진 적은 없지만 미국의 비공식 최대 축제의 날이다.
추수감사절 다음으로 음식이 가장 많이 소비되는 날이기도 하다.
당연히 술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이어서 음주운전으로 체포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날로 꼽히는 날이다.
수퍼볼 선데이가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주일이라는데 있다.
모르긴 몰라도 수퍼볼 선데이에 교회를 빼 먹는 사람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1.5세나 젊은 층이 많은 교회들은 아예 수퍼볼 선데이엔 주일 예배시간을 저녁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어느 교회에선 대형 TV 모니터를 친교실로 급하게 옮겨오는 작전(?)을 쓰기도 한다.
물론 퍼시픽 타임으로 오후 3시부터 경기가 시작되긴 하지만 사람들은 아예 교회 결석을 오래전부터 작심하고 나서니까 문제다. 이렇다보니 수퍼볼 선데이는 목회자들에겐 오히려 ‘스트레스 선데이’가 되기도 한다.
지난주 나는 뉴욕 맨하탄의 5번가에 자리 잡고 있는 마운트 사이나이(Mt. Sinai) 병원 4층 입원실에서 꼬박 3일을 보내야 했다.
뉴욕에서 공부하는 딸이 갑자기 어려운 수술을 받는다기에 만사를 제치고 날아가서 병실을 지켰다.
밤 비행기를 타고 JFK 공항에 내리자 이건 견딜 수 없는 시베리아 추위였다.
이런 추운 날에 수술대에 오르는을 생각해서 추운 것정도는 참기로 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회복실에서 병실로 옮겨지자 나와 아내는 근처 호텔방에서 잠을 자는 것 빼고는 내내 딸의 병실에 머물렀다.
병실 창밖으로는 흰 눈이 내리기도 했다.
앙상한 나무들만 서 있는 센트럴 팍이 한눈에 들어왔고 눈 덮인 센트럴 팍의 설경은 그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무슨 병원이더라?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
LA에도 베벌리 힐스에 같은 이름의 병원이 있다.
할리웃의 유명 배우들이 단골손님인 유명 병원이다.
그런데 여기 뉴욕에도 그 이름의 병원이 있었구나 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병원 견학(?)에 나섰다.
이름이 ‘시내산’인 걸 보면 당연히 유대인이 세웠을 것이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사배스 엘리베이터(Sabbath Elevator)란 독특한 엘리베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안내문에는 안식일과 유대인 공휴일에 사용하는 엘리베이터라고 써 놓은 뒤 각 층마다 정차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는 엘리베이터 단추 누르는 것도 일종의 노동 행위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이 그 날엔 단추조차 누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미리 알아서 각 층마다 꼬박꼬박 저절로 스톱해 준다는 설명이었다.
그냥 대충 대충 넘어갈 것이지 엘리베이터 단추까지 안 누르겠다고 나서는 그 숨막히는 율법주의, 그리고 그런 유대인들을 위해 안식일 엘리베이터를 따로 설치해 놓고 있는 마운트 사이나이!
그렇게 비꼬는 마음이 서서히 꿈틀거려도 나는 그 엘리베이터를 무슨 신성한 성물을 바라보듯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쥬이시 채플도 있었다.
병원 입원환자들을 위한 유대교 예배당이었다.
사실 유대인들이 세운 병원에서 유대인 방식대로 하는데 누가 뭐라 한단 말인가?
엘리베이터 주변에는 이마에 ‘빈디’라는 빨간 점이 박혀 있는 인도 여성들도 몰려다니고 병원 밖 델리버리 음식을 배달하는 머리에 두건을 두른 이슬람 청년들도 눈에 띄었다.
병원이니까 불교 여성 출입금지, 이슬람 청년 출입금지라고 주장할 리는 없었다.
유대인들이 세운 병원이지만 누구에게도 열려 있는 병원임에 틀림없었다.
딸의 수술을 성공시켰으니 감사의 마음도 있었고 인도여성, 이슬람 청년도 서슴없이 왕래하는 그 포용주의도 좋아 보였지만 그 사배스 엘리베이터, 그러니까 안식일 승강기는 더욱 마음에 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왕에 십계명을 지키고 율법을 준수하며 살아 갈 바엔 아주 똑 소리나게 100%를 지향하며 살아가겠다는 식의 그 거룩한 오기?
결국 안식일 승강기가 유대교의 타협 없는 원칙주의로 비쳐지니까 그것마저 은근히 좋아 보였던 것이다.
수퍼볼에 환장한 교인들을 위해 예배시간을 옮기거나 예배당에 TV를 실어 나르는 지나친 ‘교인 센서티브’ 개신교와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는 일이라면 병원에 별도의 승강기를 만들어서라도 지켜 내고야 말겠다는 ‘하나님 센서티브’의 유대교, 하나님은 과연 어느 쪽을 더 기뻐하실까?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유대교를 우리는 가끔 웬수 취급을 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율법 앞에 철저해지려는 그들의 모습이 때론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그나저나 이번 수퍼볼 선데이엔 화도 내지 못하고 속이 타고 있을 ‘우리 목사님’을 생각해서라도 교회 출석까지 포기하면서 TV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나태함은 당연히 삼가는 게 좋을 성 싶다.
*이 칼럼은 수퍼볼 경기 (2월 3일)전인 1월 31일 조명환 목사가 기고한 글입니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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