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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

 

요즘 NBA가 한창 달아오르고 있다. 풋볼도 마찬가지로 달아오르고는 있지만 LA엔 풋볼팀이 없어서 그래도 즐겨 보는 게 NBA 농구 게임이다.
LA엔 레이커스와 클리퍼스 2개의 팀이 있어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클리퍼스를 더 좋아한다. 요즘 서부 컨퍼런스 선두그룹에서 연승행진을 이어가며 샌 안토니오 스퍼스나 유타 재즈 등을 보기 좋게 눌러주는 실력에 갈채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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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엔 강팀 시카고 불스도 가볍게 제치고 7연승을 달리고 있지 않은가?
덩크슛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블레이크 그리핀도 있고 미국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인정받고 있는 크리스 폴, 또 조단과 버틀러, 거기다 전혀 벤치멤버 같지 않은 놀라운 실력을 뽐내고 있는 자말 크로포드나 에릭 블렛소 등이 보여주는 플레이는 가끔 넋을 잃게 한다.
그러나 내가 클리퍼스 팬이라 해도 레이커스를 그냥 못 본 척 넘어갈 수 없는 없다. 바로 올란도 매직에서 온 드와잇 하워드 때문이다.
그가 올랜도에 있을 때부터 나는 그를 좋아했다. 그러니까 짝사랑이다. 왜일까? 그의 미소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NBA에서 몇 안 되는 최고의 센터로서 하워드는 코비 브라이언트와 함께 레이커스 최고의 선수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과 크게 다른 점 하나가 있다.
그는 웃는 선수라는 것이다. 골밑에서 멋지게 덩크 슛에 성공했을 때, 그는 웃는다. 멀리서 3점 슛을 성공시켰을 때도 그는 웃는다.
파울을 범했을 때도 미안하다는 듯 슬쩍 웃는다.
움직이는 볼을 요리하는 그의 플레이는 심장을 시원하게 해주지만 죽은 볼인 프리 드로우 앞에서 그는 쉽게 죽을 쑨다.
어느 경기에서는 15개의 프리 드로우 중에 겨우 5개가 성공할까 말까다.
그러나 그런 창피스러운 순간에도 그는 웃는다.
그의 웃음은 그래서 적과 싸우는 피 말리는 경기장을 여유와 관용의 자리로 바꿔놓는다. 레이커스가 경기를 벌일 때 한번 드와잇 하워드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시라.
승패와 관계없이 그의 얼굴엔 너그럽게 웃음이 넘쳐나는 것을.
이제 금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힘든 한 해였지만 웃음으로 한 해를 보내고, 웃으며 새해를 영접하자. 아무리 프리 드로우에서 죽을 쑤었다 해도 웃음으로 실수의 아픔을 수용하는 여유를 갖자.
데일 카네기는 ‘웃음 예찬’이란 글에서 “웃음은 가정에 행복을 더하며,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친구 사이를 가깝게 하고, 피곤한 자에겐 휴식이 되고, 실망한 자에겐 소망이 되고, 인간의 모든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라고 말했다.
웃음은 엔돌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엔돌핀의 어원을 따져보면 체내에 분비되는 모르핀이란 뜻인데 모르핀이란 아편에서 축출된 진통제를 말한다.
그런데 엔돌핀은 모르핀의 약 300배에 해당하는 강력한 진통효과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 극도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엔돌핀이란 호르몬 때문이라는 것.
좌우지간 엔돌핀은 좋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의사는 뜬금없이 한번 웃으면 약 2천달러 어치의 엔돌핀이 분비된다고 말하던가? 옛날 임금들은 장수를 위해서 곁에 '웃음내시'를 두었다고 한다.
레이먼드 히치코크는 “만일 그가 여전히 웃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가난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느 블로그에 들어가니까 이런 말들도 있었다.
(1) 1일 15초 크게 웃을 때마다 이틀을 더 산다.
(2) 성인들이 1일 15번 웃는데 아이들은 400번 웃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오래 산다.
(3) 서양속담에 웃음은 ‘내면의 조깅’이라고 했다.
(4) 1백년 전에는 새의 깃털로 환자를 간지럼을 태워 치료했다.
웃음에는 미소, 대소, 실소, 냉소, 조소 등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냉소조차도 성난 얼굴보다는 건강한 얼굴이 아닐까?
지금 ‘재정절벽’ 타개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나 하원의장 존 베이너의 얼굴이 TV 화면에 비쳐질 때마다 얼굴에서부터 팍팍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 같다.
그러나 NBC의 제이 레노나 CBS의 데이빗 레터맨의 얼굴을 보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준다.
송년을 앞둔 우리들의 표정도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치~즈,’ 아니면 ‘김~치’라고 이를 내보이며 한번 웃어보자. 한 해 동안의 슬픔과 배반, 고통과 한숨, 눈물과 증오를 웃음과 함께 날려 보내자.
웃음은 살 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고 불법 다운로드도 안 되는 것이기에 오직 ‘자가 생산’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웃으며 사는 게 장땡이다.
이젠 드와잇 하워드만 보고 웃을 게 아니라 나를 깔아뭉개려는 나의 적수들을 향해서도 히죽히죽 웃으며 살자.
바람 든 무처럼 실없는 사람이라고 빈정댈지 모르지만 그게 나의 행복의 비결인 줄 그들은 혹시 깨닫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웃고 살아야 할 이유는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감히 만유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영광 때문이다.
그것 이상의 무한 횡재가 어디 있으랴!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누리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소천사’가 되어야 한다.
어려운 한 해였지만 “우리 함께 웃어요, 치~즈.”  
<크리스찬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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