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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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철 목사
<제자들교회>


“리더십은 곧 영향력이다.”는 오스왈드 샌더스(Oswald Sanders)의 지적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지도자에게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모든 것이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지도자가 아무런 영향력이 없고 부정적 영향력만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도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지도자다운 리더가 없고 지도자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교회가 지도자 양성에 집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기능을 반드시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먼저 치유하는 교회로서의 기능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순종하는 토양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굳은 마음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지도자에게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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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가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지도력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저희 집에 묘기대행진에 출연했던 세퍼트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죽을 날이 많이 남지 않은 개였습니다. 그 개는 저의 자랑거리였고 데리고 하루 한 번씩 산책 나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 개를 데리고 나가면 동네 아이들이 다 쫓아 나왔고, 나를 너무나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그 세파트의 묘기는 대단한 게 아니라 앉으라고 하면 앉고 일어서라고 하면 일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대단하다고 해봐야 자전거를 뛰어넘고 주인이 던진 공을 다시 물어오는 것 정도였습니다.
사실상 이러한 것들은 다른 개들도 다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개들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할 수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말을 알아듣고 순종하느냐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 개는 레벨이 A급으로 분류되고 극진한 대우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학교에 갔다가도 그 개와 산책 나갈 생각에 늘 즐겁고 신이 났습니다.
나이가 너무 들어 그 세퍼트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걷기도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제가 말하는 것에 변함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 돌아와 보니 혼수상태여서 일어나기는커녕 눈을 뜨지도 못했습니다. 마음이 찢어지는 심정을 그 때 처음 느꼈습니다.
더 복받쳐 올랐던 것은 제 온 것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이 꼬리를 겨우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 세퍼트는 제가 초등학교 때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저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신앙인이 비신앙인과 다른 점은 사실상 이것밖에 없습니다. 주인의 말을 알아듣고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입니다.
순종의 정도가 우리의 믿음의 수준이 됩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순종 밖에 없습니다.
순종이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의 초라함이나 무능함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우린 그냥 주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겁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30이라면 그것을 다해서 드리면 100으로 계산해서 받으십니다.
그 세퍼트가 힘이 없어져서 아무 것도 못하고 꼬리밖에 흔들지 못해도 100퍼센트 순종한 것으로 간주했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무능이나 연약함을 탓하지 않으십니다.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시대이기에 순종은 더욱 어렵습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부모와 처자식 그리고 심지어 신앙까지 버려야하는 시대이기에 순종은 구시대의 유물이나 거추장스런 개념으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순종을 제외한다면 기독교일 수 없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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