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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어렸을 때 선생이 잘못한 학생을 불러 세우고 서로 얼굴을 때리게 하는 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때리기 시작합니다. 처음 나는 살짝 때렸는데 저쪽이 세게 때리는 것 같아 이놈 바라 그래서 나도 사정없이 때립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사정없이 때리게 됩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보고 좋아합니다. 사실 나와 다른 애는 때릴 이유가 없는데도 죽자고 때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들 이 세상에서 모두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마귀가 옆에서 서로 따귀를 때리게 한 것같이 공연히 우리들끼리 미워할 필요도 없고 싸워야할 이유도 없는데 씨근덕거리며 미워하면서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모두 못 살겠다고 기쁨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들의 특권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 특권을 누리면서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들의 기쁨을 앗아가며 우리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일까요 기쁨을 앗아가는 도둑들은 첫째 환경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들이 제대로 풀리면 행복을 느끼고 한결 편히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계집애들이 소꿉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아빠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아빤 하루를 기분 좋게 마치셨을 거야 아빠가 차를 휘파람을 불며 몰고 오고 내릴 때도 문을 꽝하고 닫지도 않았거든 그리고 말이야 엄마에게 키스까지 하셨어.
그러니 오늘 아빠는 모든 것이 잘됐나봐 그러나 우리는 환경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습니다.
환경을 보다보면 우리는 도무지 행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환경에다 행복을 걸고 있는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시인 바이론은 사람은 환경의 노리갯감이라고 말했습니다. 둘째로 때로는 사람들이 나의 기쁨을 앗아갑니다.
사람들이라는 소설의 한 대목입니다. 내 딸은 학교버스가 집 앞에 멎자 현관문을 꽝 닫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이층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는 또 문을 꽝하고 닫아걸었다 계집아이는 언제나 숨이 턱에까지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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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들뿐이야 나는 계집애의 방문 앞에 서서 부드럽게 문을 두드렸다 얘야 들어가도 되니 안돼요. 계집애의 대답이었다.
나는 다시 달래보았지만 계집애는 점점 싸우기라도 할 것 같은 목소리로 안돼요. 나는 다시 조용히 물어보았다 내가 왜 들어갈 수 없니 계집애의 대답은 아빠도 사람이기 때문예요 우리 모두 사람 때문에 기쁨을 빼앗길 때도 많음을 잘 압니다.
세 번째로 재물이 또한 우리의 기쁨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길을 걸어가려니까 두 애들이 싸우고 있는데 옆에서 어른이 멀거니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애들이 왜 싸우죠. 그런데 당신은 보고만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니 그 사람의 대답이 온 세상을 그르치고 있는 바가 그 문제 때문이라오. 내게 호도 세알이 있는데 저 애들이 저마다 두 개를 달라지 뭐예요 그래서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보고만 있는 것입니다.
재산 그것은 우리에게 필요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재산이 도둑이 되다니 예수께서는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느니라(눅12:15)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땅에 재물을 쌓아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은 안전하지 못하며 영원히 존속되지 않으며 결코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재물에서 만족을 찾고 있으니 한심할 뿐입니다.
재물이 때로는 우리의 기쁨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네 번째로 걱정 또한 우리의 기쁨을 앗아갑니다.
걱정은 무엇보다 가장 나쁜 도둑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걱정 때문에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걱정 때문에 병이 나기도 합니다. 이 땅위에 나와 있는 약은 우리 몸의 병균은 죽일지는 모르나 그 병 자체를 완전히 없애 버리지는 못합니다.
약국에 가서 잠자는 약은 살 수 있지만 안식은 돈으로 살수 없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다음 어떤 신문사에서 재미있는 통계를 조사하여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인즉 전쟁 중 직접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의 수는 35만명이요 아들과 남편을 전장에 보내고 전쟁에 대한 공포와 근심걱정으로 인한 심장마비 내지 기타 질병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무려 100명이 넘는다는 의학계 통계였습니다.
전쟁의 무기로 죽은 사람은 35만명인데 비하여 염려와 근심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의 무기에 의하여 죽은 사람이 100명이 넘는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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