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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피스토스 기독대학 학장>

 

예수를 믿는데도 믿는 사람답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선입관이 신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손해를 끼치기가 일쑤일 때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가 믿는 사람답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 때 그것이 신앙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큽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버립니다. 그 수준만큼 살지 못하는 갈등을 바로 .....인척하는 것으로 해결하는 겁니다.
기도 많이 하는 척 고민이 없는 척 믿음 생활을 잘하는 척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형태는 그저 솔직히 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이 욕하던 말든 그냥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의식의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신자란 완성된 사람으로 출발하지 않습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완성되어 있다는 표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수준 높은 명칭입니까? 그런데 성경은 또한“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3:1)이 형제들이 누구입니까? 이들은 성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거룩한 자인데 신령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왜 육신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란 동화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임금님은 그 동화 속에서 가장 못난 자이고 가장 수치를 당하는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그 벌거벗은 임금님을 누가 알아냅니까? 어떤 꼬마가 임금이 벌거벗었네. 그
러나 본인은 벗지 않은 줄 알고 뽐내고, 있으며 주위에서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임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벌거벗은 성도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현 주소입니다. 또 거지왕자라는 동화는 어떠합니까? 거지가 왕자로 오해되어서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는 아무것도 몰라서 옥새로 호두를 까먹고 식사 후에는 손 씻는 물을 마셔 버립니다.
그래도 그는 왕자인 것입니다. 그의 신분이 어제와 오늘 사이에 하늘과 땅같이 바뀐 것과 그의 수준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도 신하들은 왕자로 대우합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런 사람이 왕자라니 내가 오늘 마땅히 왕으로서 살아야 할 부름을 받은 것과 왕으로서 완성되어 있다는 것은 거리가 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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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이 우리는 왕자입니다. 신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얻은 모든 사람들이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왕자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제까지 살던 버릇을 하루아침에 버리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내 자신이 왕자로 믿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내가 왕자답지 않기 때문입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왜 그런지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게 고분 거린다는 것 뿐 자신은 옛날 그대로 인데 이런데서 훨씬 더 버릇이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명령하면 무엇이든지 복종한다는 것을 알고 신앙인들의 버릇없는 망나니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런 신분으로 세웠기 때문에 지금 이런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지 않고 이 수준이라도 사람들이 굽실거리는구나 하고 생각하여 버립니다.
그리하여 기독교란 대단한 것이 아니구나, 기도만 하면 되고 십일조만 내면 하나님이 꼼짝 못하시는데 뭘 또 십일조를 내면 갑절이 생기는데 왜 그걸 못해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신앙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분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허락된 신분에서 우리는 어린아이로부터 시작하여 장성된 어른으로 가게 되기를 요청 받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 차원의 유아기에는 주옵소서. 라는 것밖에 모릅니다.
축복이나 은혜밖에 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영적으로 유아기 때입니다. 이것을 뛰어 넘어가는 시기가 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대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과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의 자녀에게 요청된 수준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되며 어떻게 의롭게 선하게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것은 자녀다운 조건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분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성되어 있다면 더 이상 살아있을 필요가 없을지 모릅니다. 완성되는 날이 제대 날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제대가 아직 멀었다는 뜻입니다.
아직도 훈련 받아야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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