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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삼 목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던가요? 그가 가 있는 곳 낙원은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낙원에서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봅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고난도 피하지 않고 전진했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그곳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 아니 무슨 청천 병력입니까? 100세에 얻은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어떠했을까요? 우리는 지금 성경에서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를 알고 있으니까 실감이 나지 않을지 모르나 아브라함은 얼마나 놀라며 마음이 떨렸겠습니까? 주여 당신은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이삭을 통하여 하늘의 별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마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이게 무슨 명령입니까? 아브라함은 온 밤을 눈물로 모순과 씨름하며 밤을 꼬박 새우며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했습니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체념했을까요? 요나처럼 도망갔던가요? 끝까지 원망하고 복종하지 않았던가요? 아닙니다.
밤이 맞도록 고민한 아브라함이었지만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사환과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마련하고 하나님이 지시한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한 점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들과 무엇이 달랐습니까? 사울 왕처럼 키가 컸던가요? 제갈공명처럼 지혜가 뛰어났던가요? 역도산처럼 힘이 장사였던가요?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그의 위대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한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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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이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묵묵히 인내하면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3일 동안 모리아 산을 향해 걸어가면서 그는 이 모순과 자기의 순종과 싸움을 했을 것입니다.
고통을 씹으며 걸어가는 모습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나아가시던 예수님의 고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음마다 핏자국이었듯이 아브라함의 걸음마다 눈물이 고였을 것입니다. 밤이면 자기가 제물이 되어 바쳐질 것도 모르고 순진스럽게 잠든 이삭을 바라볼 때 그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났을 것입니다.
어느 장소에선가 이삭이 문득 물었습니다. 아버지 여기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있습니까? 하고 물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칼로 찌르듯이 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이때 울부짖으며 돌아가자 나는 못하겠다고 떼를 썼을지 모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주님께서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물러가게 해달라는 아픔의 대화를 연상케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복받치는 울음을 삼키며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그의 막연한 믿음 아니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믿음은 결국 놀랍게도 성취된 것을 우리는 봅니다.
아브라함은 고통을 인내로 참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전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버릴 것을 버리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했던 것은 버릴 때 버릴 줄 아는 믿음이었습니다.
미련없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버렸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할 때 롯의 아내와 같이 뒤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는 미련이 없이 떠났습니다.
이삭을 바칠 시간이 왔습니다. 이삭을 단 위에 묶어놓고 칼을 들어 죽이려는 순간 아브라함은 자기를 죽이는 것 같으며 제 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며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하고 원망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순종의 손만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삭에게 너는 제물이 되기 위해 죽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여 순종하도록 말해야 할 때처럼 고통스러운 순간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삭이 울면서 아버지 안돼요. 싫어요. 아브라함의 마음은 찢어질 대로 찢어졌습니다.
참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도 놀랍지만 33세난 이삭의 순종 또한 놀라운 것입니다. 오 갈기갈기 찢어지는 그 심정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 부르짖던 예수님을 보며 고통 하시던 하나님을 봅니다.
이제 최후의 순간은 왔습니다. 골고다의 어둠은 깊어만 갑니다. 칼을 든 순간 절망의 순간 십자가상에서 하나님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것은 이삭의 소리요 아브라함의 소리였습니다. 아니 그것은 예수님의 소리였습니다. 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 큰 은혜 더 큰 축복을 낳기 위한 진통의 소리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마땅히 있어야할 소리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금년도 아브라함처럼 순종하여 축복을 받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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