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무장한 평범한 성도들은 언제나 강하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국내외 희귀 성경 유물 선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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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7일은 종교개혁(1517년 10월 31일) 507년이 되는 주일이다. 

독일의 종교개혁자이자 신학자인 마르틴 루터(1483~1546)의 95개조 반박문으로 시작된 종교개혁 정신을 되새겨보는 것은 기독교인에게 신앙을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종교개혁은 특히 기독교 신앙의 토대는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오직 성경에 있다고 천명했다. 

진리는 성경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영원히 존재하는 분이며 인생의 목적과 운명의 원천이 되는 절대자임을 고백한다. 

이 특별한 주일을 맞아 국내 최초의 종교박물관인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황민호 관장)이 마르틴 루터 성서와 최초 한글 성경 등 210점의 국내외 희귀 성경 유물을 전시한다. 

그중 일부를 국민일보 지면에 선공개한다.

‘오직 성경으로’ 종교개혁 핵심 가치

종교개혁 5대 원리 중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성경만이 신앙의 최고 권위를 가지며 모든 것들에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풍성한 말씀을 신자 개인이 누리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숱한 박해를 받았고 필사자와 번역자, 그리고 이름 없는 신실한 종들의 희생과 사명이 있었다. 

이는 여러 증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2세기에 필사된 두루마리 형태의 대이사야서(복제)는 이스라엘의 사해(Dead Sea)에서 발견된 성경 사본 중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다. 

현대 히브리어본과 99%가량 일치하는데 이는 1000년간 성경 필사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는 증거로 평가된다.

루터 이전에 출간된 성경과 또 다른 개혁자들이 남긴 저서들은 기독교 역사를 뒤흔든 루터라는 존재가 진공 상태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님을 방증한다. 

종교개혁을 외치다 화형당한 체코 출신 얀 후스의 제자 페트뤼스 드 믈라데노비치가 1414년 콘스탄츠공의회 결정에 항의하며 작성한 후스와 콘스탄츠 공의회(원본)와 루터의 동역자이던 안드레아스 카를슈타트가 루터보다 먼저 쓴 151개 항목의 교회 비판문인 면죄부에 반대함(원본)은 초기 개혁자들이 직면한 도전을 엿볼 수 있다.

1522년 루터가 번역한 신약성서 이전에도 1000권 이상의 독일어 성서 필사본과 18권의 인쇄본이 존재했다고 알려진다. 

필자가 알려지지 않은 1515년 독일어 성서 번역(원본)은 번역의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당시 자국어로 성경을 읽고자 하는 열망이 담겼다.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시킨 주인공이다. 

라틴어 불가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고 (구텐베르크가 촉발한) 인쇄술의 발전으로 대중에게 더 빠르고 더 많이 성경을 보급할 수 있었다. 

루터가 1521년 파문된 뒤 작업해 1526년 출판한 마르틴 루터 신약성서(원본), 이보다 2년 앞서 번역된 마르틴 루터 구약성서 2부, 3부(원본)는 기존에 존재하던 산발적이고 비체계적인 독일어 성경 번역을 집대성했다는 데 그 의미가 깊다.

루터 시대 나온 ‘영어 성경’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영어로 최초로 번역한 윌리엄 틴데일의 틴데일 신약성서(원본)와 영국 왕실이 최초로 공식 인정한 커버데일 성서(원본)가 있다.

신·구교 갈등을 완화하며 화해의 정신이 깃든 킹 제임스 성서(KJV·원본)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번역 성경으로 꼽힌다. 

초판 일부 인쇄본의 룻기 3장 15절의 ‘그녀’ 대신 ‘그’라는 오자가 있어 ‘He 판본’ ‘She 판본’으로도 구분한다.

 

‘만국에 말씀이 있었다’

역사 속에서는 성경을 금지하고 파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런데도 성경은 만국 언어로 번역돼 퍼졌다. 특히 시리아 튀르키예 이집트 등 현재 이슬람 국가조차도 토착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존재했다. 

아랍어 성경은 역사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한때 찬양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대표적 이슬람 국가인 예멘에서 쓰인 성경 유물들이 그렇다. 

15세기의 마소라 사본(원본)에는 당시 활동한 마소라 학파의 히브리어 성서 전승의 전통에 따라 창세기와 출애굽기가 담겨 있다. 

17세기의 메길라 타르굼과 라시의 주석(원본)은 아가서와 룻기, 전도서가 히브리어로 표기됐으며 아람어 번역도 여백에 적혀 있다.

시리아어로 필사된 9세기 시리아어 페시타 오경 낱장(원본)과 17세기 투르크메니스탄의 콘지칼라 토라(원본), 18세기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토라(원본)는 현재 이슬람 국가의 과거 왕성했던 성경 번역 활동과 만민의 종교로서의 위상을 보여준다. 

8세기 중국 당나라에도 기독교 교리가 전파됐다. 

대진경교삼위몽도찬(복제)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찬송가로 선교사인 네스토리우스 대주교가 삼위일체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아 지었다.

세계에 널리 퍼진 성경은 현대를 사는 기독교인에게 두 가지 역설적 교훈을 던진다. 

기독교 국가라고 할지라도 역사의 도도한 물결에 의해 다른 종교에 의해 잠식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멸절된 것처럼 보이는 땅에서도 거룩한 말씀의 그루터기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선교사보다 3년 앞서…’ 한국 기독교의 출발

종교개혁주일에 맞춰 국내외 유물이 전시되는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서울 동작구 숭실대 캠퍼스에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숭실대 (평양) 개교 127주년 및 서울숭실세움 70주년 기념의 의미도 담겼다.

숭실대 설립자인 미국 선교사 윌리엄 마틴 베어드(한국명 배위량)가 한국어로 편찬한 천문학 교과서인 텬문략해(원본)와 그의 아내 애니 베어드가 편역한 과학 교과서 동물학(원본) 등도 전시된다. 이는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연계의 질서를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로 이해하고 가르치려는 깊은 열망을 보여준다. 

기독교가 한국에서 얼마나 자생적으로 발생했는가를 드러내는 유물도 만날 수 있다. 

외국인 선교사가 한국에 오기 3년 전인 1882년 만주 봉천에서 최초의 한글 성경인 요한복음(원본)이 간행됐다. 

스코틀랜드 연합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활동한 존 로스 목사 등이 한국인 개종자와 협력해 번역했다. 

1887년 신약 전체가 번역된 예수성교전서(원본)는 국내에 자생적인 신앙공동체가 형성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숭실대 교목실장 김회권 교수는 4일 “하나님의 말씀이 만민의 언어로 읽히고 소장될 가치가 있다는 것이 전시에서 여실히 드러날 것”이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이 성경을 필사하는 것처럼 세상의 풍요를 좇기보단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필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더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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