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선생님, 출처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인용문은 우리 서점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이 서점이 독자와 작가를 위한 피난처가 되고 또 모든 이들이 환영받는 장소가 되도록 일하고 있습니다. 귀하께서 친절하게 알려주신 이 인용문의 출처를 다시 잊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7일 주일 저녁,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서점’으로 알려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측으로부터 받은 메일 내용이다.
‘노인과 바다’로 노벨상을 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20세기 초엽 미국의 대표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 F 스콧 피츠제럴드, ‘율리시스’의 천재 작가 제임스 조이스, 모더니즘 시 활동의 중심인물인 T S 엘리엇과 에즈라 파운드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인이 와서 어울리던 이 서점은 무료 숙박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람에 날리는 잡초’라는 의미로 ‘텀블위드(Tumbleweed)’라 불리는 숙객은 동시에 여섯 명까지 짧게는 한 주, 길게는 한 달간 숙박할 수 있다.
서점 내 마련된 스튜디오에 묵으면서 서점의 책을 매일 한 권 읽고 떠날 때 한쪽 분량의 자서전을 제출하는 것이 조건이다.
아울러 이들은 서점 일을 거들지는 않지만 서점이 주관하는 주간행사 준비는 돕는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이런 전통은 1919년 동명의 책 대여점을 시작해 늘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않았던 실비아 비치에게서 시작됐다.
가난한 무명작가였던 헤밍웨이가 그런 손님 가운데 하나였다.
가진 것 없이 파리를 찾아 머물던 그가 그 시절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던 건 그를 편하게 맞아주며 무료로 책을 내어 주던 실비아 비치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훗날 헤밍웨이는 회고록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이런 실비아 비치와 그녀의 대여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랬던 실비아 비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투옥되고 대여점은 강제로 폐업을 당한다.
이렇게 문을 닫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오늘날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강 건너편에 건재하는 것은 실비아 비치가 보여준 가치관을 이어가는 새 서점주 휘트먼 부녀 덕이다.
1951년 서점을 처음 시작해 1964년 이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전통을 이어간 조지 휘트먼과 딸 실비아 휘트먼은 그동안 4만명 넘는 ‘바람에 날리는 잡초’에게 무료 숙박을 제공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조지 휘트먼이 서점 벽에 큰 글씨로 페인트칠을 한 문구가 있다.
“낯선 이를 불친절하게 대하지 말라. 위장한 천사일 수도 있으니.”
필자는 얼마 전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딸 실비아 휘트먼이 이 문구를 가리키며 ‘아버지가 남긴 본 서점의 정신을 담고 있는 문구’라 말하는 것을 우연히 접했다.
성경에 나오는 표현을 아버지 휘트먼이 빌려 지은 문구일 듯한데 그 기록을 남기지 않아 성경 어디인지 알 길은 없다는 대목이었다.
신학대학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필자가 이를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그래서 메일을 보내 히브리서가 그 출처임을 알려주었고 서점 측은 고맙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 얼마나 귀한 가르침인가! 동서남북,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이 말씀의 혜택을 마다할 이가 과연 있을까.
이런 가르침이 우리에게 있다는 건 참으로 자랑거리이요 감사할 일이다.
이 가르침의 출처를 알지 못하면서도 손님 대접하기를 잘 실천한 서점이 있을진대 이 출처를 잘 알기까지 하는 성도의 삶의 터전은 천사들로 얼마나 북적거릴까 흐뭇한 생각을 가져본다.
박성현(미국 고든콘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수석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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