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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필도 수영로교회 원로목사가 2000년 무렵 부산 수영로교회 옛 예배당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정필도 수영로교회 원로목사는 '기도, 선교, 청빈, 행복'이라는 신앙 유산을 남겼다. 

수영로교회는 정 목사가 21일 별세 직전 병상에서 성도들에게 "적당히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라"는 유언을 했다고 23일 밝혔다. 

정 목사를 기리는 발길이 부산 해운대구 수영로교회 조문소에 끊이지 않고 있다. 

전국에서 온 조문객들은 교회에 마련된 조문소까까지 100m가 넘는 긴 줄을 만들고 있고, 교회 홈페이지 온라인 조문소에도 조문글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와 동역했던 목사와 신앙 생활을 한 성도들은 정 목사의 삶을 돌아보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그 뜻을 이어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부산성시화운동을 함께했던 최홍준 부산 호산나교회 원로목사는 "정 목사는 부산 성시화 운동에 앞장섰고 나는 이 운동의 부교역자라는 마음으로 평생 그분을 따랐다. 고인은 항상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던 '기도의 사람'"이라고 회고하며 울먹였다.

정 목사는 강단이 기도로 채워지면 예배당이 채워진다는 믿음에 따라 항상 기도하면서 목회했다. 

전도사 시절 강단에서 눈물로 기도했고 3개월 만에 성도가 107명으로 늘어나는 경험을 했다. 

1975년 연고가 전혀 없는 부산에서 개척할 때도 기도로 결정했다. 

그의 이런 목회 철학은 저서 '교회는 무릎으로 세워진다'에 잘 나타나 있다. 

성도들이 여러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불평할 때도 "입 다물고 기도하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충실한 '선교의 사람'이었다. 

여러 선교 모임에서 정 목사와 자주 교제했던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는 "정 목사는 목회와 선교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분이라 늘 동질감을 느꼈다"며 "고인은 하나님의 2가지 명령 즉 전도(Great Commission)와 사랑(Great Commandment)에 사로잡혀 평생을 사셨다"고 평가했다.

정 목사는 버스 위에 올라가 확성기를 들고 부산 시내에서 노방전도를 했다. 

이를 통해 수영로교회를 지역 최대 교회로 키우고 부산을 성시화했다. 

또 은퇴 이후에는 중국 캄보디아 러시아 독일 등 전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했다. 

이 목사는 "정 목사는 전도와 선교에 집중했고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기도로 품고 살았다. 이런 고결한 집중이야말로 그가 한국교회에 남긴 소중한 유산"이라고 했다.

정 목사는 '청빈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에게만 의지했기 때문에 이 땅에 부(富)를 쌓거나 권세를 얻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수영로교회 관계자는 "정 목사는 본인 이름으로 된 차나 집이 없다. 살고 있는 집이나 사용하는 차는 모두 교회 명의"라고 했다. 

2011년 후임자를 세울 때도 투명한 절차에 따라 이규현 목사를 세웠다.

그는 우리는 말씀에 따라 씨를 뿌리지만 거두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생각으로 목회를 하나님께 맡겼다. 

스스로 행복한 목회자라고 했다. 

정 목사는 지난달 13일 수영로교회에서 마지막으로 한 설교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한 인간으로 만드셨다'(창 1:26~31)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사랑을 받으면 우리는 행복할 수밖에 없다"며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서 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했다. 

정 목사는 임종 직전 병상에서 "적당히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라"는 유언을 남겼다.

성도들과 목회자들은 위로예배에서 이 유언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로 다짐했다. 

한 성도는 "자기 이름으로 된 집 한 칸 없이 청지기적인 삶을 보여줬다"고 했다. 

다른 성도는 "이 시대의 참 목회자다. 큰 교회를 세우고도 교만을 경계했다. 함께해서 행복했다"고 했다. 

또 다른 성도는 "영적 어른이다. 좋은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정 목사의 발인예배는 25일 오전 9시 수영로교회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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