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변호사와의 만남....김종찬(전TV 토론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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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든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가 중요하지요.
황제가 되어서도 늘 불만에 가득할 수 있으며, 거지가 되어서도 만족함이 넘칠 수 있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감방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짓고 들어온 죄수에게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니 나라에 미안해하며 감사할 수도 있고, 재수없게 또는 억울하게 걸려서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남보다 몇십배 고통스러워하기도 합니다.
특히 미결수 감방에서는 그 정도의 차이가 심하지요.
아직 죄와 벌이 확정되지 않았으니, 이른바 무죄추정의 원칙이 그곳에서는 적용되는 것이 옳으니까요.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미결수 감방까지 온 사람들은 대개 유죄판결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저 역시 이 반열에 들게 된 것이고요.
저는 죄를 짓고 들어와서 국민의 세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게 되어 무척 미안했습니다.
이곳저곳 불려 다니지 않는 날에는 대체로 책을 읽었습니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으니 시간을 절대적으로 소유할 수 있어 독서환경으로는 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감방이나 선방이나 매 한가지일 것입니다.
감방은 법에 의하여 죄를 씻기 위해 잡혀 오는 곳이고, 선방은 자기 스스로 정신을 정화하기 위해 찾아들은 곳이라는 것이 다를 뿐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밀린 숙제를 하듯이 독서에 매진하였습니다.
하루에 세 권을 읽었던 날도 있었습니다.
모든 조사도 다 끝났고, 그저 재판할 날만 기다리면 되게 되었으니, 한가롭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날도 온종일 책을 읽으면 되겠다고 생각하여 오늘 읽을 책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44번 나오세요.” 44번은 제 죄수번호였습니다. “변접입니다.”
변호사가 접견을 하러 왔으니 가자는 소립니다.
교도관의 목소리가 들리고, 감방 문이 열렸습니다.
교도관의 호위(?)를 받으며 변호사 접견실로 갔습니다.
접견실로 들어서니, 접견실 담당 교도관이 “변호사가 몇 분이세요?” 라고 물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오늘은 또 다른 변호사가 오실 거여서 그런다는 거였습니다.
사실 저는 변호사 선임과 관련하여 일언반구 한 적도 없었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 애써 변호사를 선임하고 동분서주하였을 뿐입니다.
그렇게 선임된 변호사가 접견을 몇차례 왔고, 그 분들 말고는 전혀 의외의 변호사 몇 분이 저를 찾아왔으므로, 오늘 어떤 변호사가 올지에 대해 저도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늘은 박원순 변호사가 접견 신청을 했습니다.”
교도관의 말을 들으면서 저는 망연자실 하였습니다.
그의 접견을 거부하고 감방으로 되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접견실에 들어섰고, 접견실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박원순 변호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는 “여긴 뭐하러 왔습니까?”라고 했고, 그는 늘 그러하듯 소년처럼 웃으면서 “당연히 와야죠.”라고 했습니다.
저도 자리에 앉았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이런 꼴을 보이고, 이곳까지 오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얼른 가세요. 저는 이제 박 변호사와 가까이 지낼 사람이 못됩니다. 괜히 저같은 사람과 안다는 것이 박 변호사의 이름에 흠이 될까 두렵습니다.”
그는 그냥 웃고만 있더니,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저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얼굴 봤으니 빨리 가라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빨리 갈 기세가 아니었습니다.
저를 보러 오기 위해서 오전에는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았다는 거였습니다.
자기가 변호사기 때문에 이렇게 뵐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는 변호사로서의 상업행위를 하지 않은 지 오래인 변호사입니다.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 그리고 희망제작소에 이르기까지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이지요.
그는 공안검사 출신의 법조인으로는 별나게 시민운동을 통해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가 존중하는 가치를 한결같이 추구하는 항심의 소유자이므로 정치적인 개인이나 집단에게서 야박한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헛발질을 하지 않은 드문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제게 찾아온 것이니 저의 불편함이란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어쩌다 그러셨어요?
그가 제게 한 말입니다.
그가 제 잘못을 말한 것이지요.
그래서 제 불편함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어요.”
그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건과 관련해서는 여기까지가 전부였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의 하는 일과 그도 알고 저도 아는 사람들 얘기를 한 뒤, 그와 작별하였습니다.
 “건강 잘 지키세요.” 라고 했고, 저는 “미안해요. 이런 모습 보여서” 라고 했지요.
그와 헤어져 감방으로 돌아오는 길이 매우 슬펐습니다.
제 잘못으로 저렇게 바르게 사는 사람을 이런 곳까지 찾아오게 한 것이 실로 애통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아울러 박원순이란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하고는 공식적인 관계일 뿐 사적인 관계가 아닌 사람이지요.
고향도, 출신학교도 다 다르지요.
다만 시민운동 열심히 하는 그를, 거들 수 있는 만큼만, 제한적으로 거든 게 저와 그의 관계의 전부인데, 이곳까지 찾아온 그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변호사 얘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박재영 변호사인데, 저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분이었죠.
방송국 친구들이 그를 제게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했는데, 이분은 수임료 한 푼 받지 않고서 1심에서 3심까지를 모두 챙겨준 변호사입니다.
지금까지도 자별하게 지내는데, 그는 틈만 나면 접견을 하기 위해 제게로 왔습니다.
왜 왔냐고 하면, 호방하게 웃으면서, 제가 오면 감방에서 나와서 편안히 쉴 수 있지 않느냐고 했지요.
감방 안에서 답답해 할 제게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면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오는 것인 줄을 제가 왜 몰랐겠습니까.
무료로 변론을 하면서 오히려 저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귀한 시간과 물질을 쓰는 기탄없는 그의 모습에서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더한 죄를 졌더라도 반드시 찾아와야 하는 사람은 그림자도 볼 수 없는 세상인데, 저를 찾아와서 <사람>을 가르쳐준 박원순과 박재영 두 변호사에게 큰 빚을 졌다고 하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마음먹기 따라서 감방은 선방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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