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간증문을 보내주신 강용기 전도사는
주님이 주신 경험을 항상 기억하며 앞으로
주님의 자녀로 사람과 하나님이 보시기에
주님이 원하는 목회자가 되기를 소원하고
있다고 간증했습니다.
그의 간증을 3차례에 걸쳐 계재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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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용기 전도사
<헤브론 교회>


참 놀라운 것은 당시 학교에서도 음악과 미술에 소질이 없어(이것은 아버지의 형질을 받은거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피아노를 못칠줄 알았던 나에게 주님은 총 8개월에 거쳐 하루에 7-8시간씩 연습하게 함으로 총 300여곡의 찬송을 외우고 치게 하셨다.
이런 모습만 봐도 주님은 살아계신게 분명한데 어리석은 나는 내가 잘난줄 알고 신동인듯이 여겼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지금도 피아노를 가끔 치지만 아직도 건반을 누군가 누르면 그 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렇게 찬송가를 배워 군에가기전 4년동안 교회에서 반주를 하게 되었다.
웃긴 사실은 찬송가 이외에 다른 악보를 받아도 치지 못한다는 것이 웃길 따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님은 피아노를 칠수 없는 나에게 교회에서만 반주할수 있는 속성의 달란트를 당시 주셨던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피아노를 치고 배우게 되어 나의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냐하면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것이다. 당시까지도 가난이 싫고 공부도 딱히 잘하지 못했고 어떤 재능이 보이지 않았던 소심한 90kg의 뚱뚱한 나에게 주님은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자신감과 나의 눈을 열게 해 주셨다.
이후로 나는 반주로 4년간 봉사했지만 처음의 감격이 오래가지 않았다. 목회자의 자녀들은 다 알겠지만 내 경우에 있어 피아노 반주를 하다보니 다음주에 칠 3-4곡의 찬송가를 한주간동안 외워야 했고 모든 예배 참석과 학업을 진행 했으니 부족한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거기다가 성가대 연습을 통해 더 잘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니 아직 어린 나에게는 모든 것을 소화해내기가 힘들었다.
이런 교회 생활을 하면서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해 직장을 가져 교회를 떠나는 마음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정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돈이 없는 나에게는 청주를 떠나기란 힘들었고 또한 교회의 여건도 힘들었다.
그래서 그당시 교회와 멀지 않았던 충북대학교를 선택하게 되었고 졸업하자마자 운전면허를 따서 교회의 모든 차량운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토록 떠나고 싶은 교회와 내 삶이었지만 어쩔수 없이 다시 메이게 된 것이다. 새벽,수요,금요,주일낮,저녁예배의 운행을 하면서 또한 한편으로 학교생활과 등록금의 문제로 과외며 20가지의 part time job를 가지면서 나는 당시의 꿈은 지하실 교회를 벗어나는 거였고 소원은 군대를 가는 것이었다.
누가 당신의 꿈과 소원을 물어보면 원대한 것을 물어볼지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 그것은 먼나라 이웃나라의 얘기였고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나를 당시에 주님과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감당하기 힘든 삶이었다. 소위 개척교회의 아들은 차량기사고 딸은 피아노 반주자라고 하는데 참 나에게는 힘든 말이었다.
나에게는 남동생이 있는데 남동생은 나와 11년이라는 나이 차가 있었는데 11년 차이나는것이 싫었다.
연년생이면 서로가 도우며 서로의 힘든것을 나눌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나는 누구에게 나의 힘듦과 고충을 얘기할수 없었다.
남들은 그러면 아버지랑 얘기해보지 그러냐?라고 물어볼지 모르지만 이런 교회생활과 나의 교회와 학교속에서의 이중적인 나의생활과 모습으로 인해 그리고 바쁜 아버지와의 한동안 대화의 단절로 인해 나는 외톨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것 같다. 하지만 20대초에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교회를 벗어나게 된것이다. 그것은 군대에 들어가는 것인데 나는 군에 들어가면 교회와 나의 모든 악순환은 당분간 끝날줄 알았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오판이었다. 아버지와 같은 논산 훈련소로 가게된 나는 거기서 6주의 훈련을 받았는데 5주차때 우리나라 처음으로 아버지와의 신병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겨 한주간 아버지와 함께 생활을 하며 훈련을 받는 것이 생겼다.
이 프로그램에 6:1의 경쟁률을 뚫고 소대당 1명씩 아버지와 같이 훈련을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것이다.
이때 아버지는 경쟁을 뚫고 나와 같이 5일간에 걸쳐 먹고자고 훈련을 같이 했으니 나의 기분이 어땠으랴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같이 말하고 먹고 마시고 생활을 하니 나에게 있어서는 이런 기분을 다시 느껴보지 못할만큼의 기쁨이 있었다.
마지막 신병체험날 당시 연대장은 우리 나라의 처음 하는 프로그램이고 80여며의 내신들이 취재하고 있는터라 신병병영체험졸업식 연설을 할 아버지를 뽑던 가운데 청주대 예술대 총장이던 분과 아버지 두분중 총장인 아버지가 할 것을 그 분이 그래도 목사님이 해야되지 않겠냐는 의견에 아버지가 뽑히게 되었다.
이것이 주님께도 영광이었고 우리 가족에게도 영광이었다. 당시 이 연설로 인해 나의 인생이 바뀌었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연설문을 만들고 마지막은 하나님과 예수님이라는 말을 넣어 연설문을 완성했는데 단 이 단어만 빼고 모든 것을 좋다고 여긴 군은 두단어를 빼고 연설하기를 바랬고 아버지 또한 표면상으로는 뺐지만 정작 기자들앞에서 당일은 이말을 넣고 함으로 주님께 감사함을 표현했다.
이것이 당시 9시뉴스에 짧게나마 나올정도였으니 당시의 사람들의 관심이 많았음은 분명했다.
이런 아버지의 연설덕에 나는 키가 174cm임에도 불구하고 보직을 헌병으로 받고 그 누구도 빽이 없음 안되는 서울 용산의 국방부에서 헌병으로 보직 생황을 하였다.
훈련소를 마치면서 주님께 감사했던 한가지가 기억에 나서 말하고자 한다. 이런 나의 지하실과 학교 생활이 나에게는 힘듦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스트레스는 피아노를 연주함으로 날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만약 어렸을적부터 피아노를 배웠다면 몇천명의 사람들 앞에서 연주도 하고 갈채를 받았을텐데의 중얼거림을 했었는데 나의 주님은 이말을 실행에 옮기셨다.
논산 훈련소에 들어가기전 보충대에서 옷과 필요한 물품을 받는도중 수요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예배시작전에 거의 2000명의 신병들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좋은 엠프시설과 악기는 나의 눈을 자극하였다. 이런 가운데 예배를 인도하시는 분이 현재 교회에 악기가 준비되어 있으니 혹시 악기를 다룰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라고 해서 많은 장병들이 드럼,기타,싱어,베이스등 다른 악기들은 나왔지만 유독 피아노 반주자만 안나왔다.
내가 상황을 보고 내가 나갈까 하다가 실력이 실력인지라 내가 나가면 안될거 같아 가만히 있는데 다시한번 인도자가 혹시 피아노 칠줄 아는 사람이 없냐고 하자 나도 모르게 손을 들게 되고 나가게 되었다.
당시 찬양중 “주께 찬양해 탬버린으로”라는 후반절에 탬버린을 제외하고 각종 악기의 이름을 대면 솔로로 연주하였고 나는 처음으로 만져보는 그랜드 피아노에 몸을 맡겨 잘 치진 못했지만 같이 어우러져 2000명 앞에서 찬송가로 사람과 주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이걸 생각하면 나의 아버지 하나님은 나의 말을 하나도 잊어버리시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주님께 감사드렸다. 이런 감사속에 작은키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군을 대표하는 국방부에서 나는 2년2개월동안 근무했다.
작은 키와 교회생활로 인하여 구타와 폭언을 받았지만 지금에 생각해보면 그것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던것 같다.
부대에 처음 온 나는 주일에 근무로 인해 교회를 못가게되자 그 당시까지 어렸을적부터 목회자의 자녀로 당연시 여기며 갔던 교회가 나에게는 갈수 없는 장소가 된것이다.
그렇게 교회를 떠나면서 군대를 오기를 바랬던 나는 몸에 베어있던 주일성소를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믿음과는 관계없이 하지만 이런 오기로 인해 1년간 힘들었지만 국방부에 있는 국군 중앙교회의 신우회 회장으로 15개단위의 군종병의 장이 되었다. 장이라는 직책은 그렇지만 주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헌병으로 군 생활을 했고 주일은 온전히 주일성소를 하고 장군님을 집사님과 장로님으로 부르는 특권까지 생기게 되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내가 이렇게 까지 복을 받게 될줄이야 과연 주님은 나에게 멋진 아버지셨다. 국방부는 다른 부대와는 다르게 많은 별들 즉 장성이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있는 교회에 국방부 장관뿐아니라 많은 별들이 교인으로 있으니 그분들이 나를 이뻐해주시고 챙겨줌으로 나의 군생활은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많은 축복을 누리며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일개 사병이 two star에게 집사님 할정도였으니... 참 주님께 영광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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