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  미국 절반의 주가 임신중절 제한할 듯

찬반 시위 격렬, 조 바이든 "슬픈 날" 중간선거 쟁점화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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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낙태권 보장 판례를 뒤집은 미 연방대법원 판결 직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주의사당 건물 근처에서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절(낙태)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번복하면서 미국 전역에 파장이 일고 있다. 

미국 곳곳에서는 대법원 판결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시위를 벌였고,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도 유감을 표했다. 

미국 기업들은 직원들의 원정 시술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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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 모인 시위대

 

●  로 대 웨이드 판례  49년만에 뒤집었다 "임신중절 권리 보장 아니야"

 

연방대법원은 24일(현지시간) 1973년 미국 여성의 임신중절 권리를 처음으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를 50년 만에 뒤집었다.

로 대 웨이드 판례는 여성의 임신중절 권리를 수정헌법 14조에 명시한 사생활의 권리로 본 판례다. 

지난 1969년 텍사스주의 미혼 여성 노마 맥코비(22)가 셋째 아이를 임신한 것이 이 판결의 발단이었다. 

과연 헌법이 여성의 낙태 권리를 인정할 수 있느냐가 쟁점으로 연방 대법관들은 1973년 1월22일 7대 2로 로(맥코비)의 손을 들어줬다. 

로 대 웨이드 판례가 이뤄지기 전까지, 미국에서는 각 주 대부분이 산모 생명이 위험한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임신중절을 제한해 각종 부작용을 낳았다.

이날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다수의견은 로 대 웨이드 판례 이후 법원이 임신중절을 권리로 인정해 왔지만 "미국법이나 관습법이 이런 권리를 인정했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우리는 로 판례가 뒤집혀야 한다고 본다"라며 "헌법은 임신중절을 언급하지 않고, 헌법적으로 이런 권리를 암묵적으로 보장하지도 않는다"라고 했다. 

아울러 "로 판례는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잘못됐고, 그 추론은 매우 약했다. 그 결정은 해로운 결과를 불러왔다"라고 평가했다.

다수의견은 "로 대 웨이드 판례가 임신중절 문제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도출하기는커녕 논쟁에 불을 붙이고 분열을 심화해 왔다"며 "이제는 임신중절 문제를 국민의 선출된 대표들에게 넘길 때"라고 했다. 

또한 "임신중절은 심오한 도덕적 문제를 제기한다"라며 "헌법은 모든 주의 주민에게 임신중절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행위를 금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발표된 다수의견에는 얼리토 대법관 외 클래런스 토머스,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등 총 5명이 함께했다.

반면 진보 성향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헬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근본적인 헌법적 보호를 잃은 수백만 명의 미국 여성에 대한 비애와 함께, 우리는 반대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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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방대법관 9인

 

●  트럼프 시절 임명으로 보수 대법관 우위, 미국 주의 절반 임신중절 금할듯

 

트럼프 행정부 시절 임명된 보수 성향 대법관들로 대법원 이념 구도가 보수 우위로 재편된 것도 이번 판결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성향 대법관 6명 중 닉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3명의 대법관이 전임 행정부에서 임명됐다.

이날 판단을 근거로 각 주는 임신중절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 판단으로 미국 50개 주 중 절반가량이 임신중절을 금지할 전망이다. 

뉴욕타임즈(NYT)에 따르면 미국 내 13개 주에서는 이번 판단이 나오면 자동으로 임신중절을 제한·금지하는 법이 발효되도록 한 트리거 법안을 마련해 뒀으며, 30일 내 임신중절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트리거 법안에 따라 미주리에서는 50개 주 중 처음으로 건강상 비상 상황을 제외한 임신중절을 금지했다. 

미시시피, 텍사스 등에서도 주법무장관이 대법원 판단 공개 직후 성명을 내고 임신중절 제한 조치 시행을 발표했다.

 

●  둘로 쪼개진 미국, 정치 공방 거세질 듯

 

미국은 둘로 쪼개졌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마자 낙태권 옹호 시위가 벌어졌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찬반론자들간의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 연설을 통해 "주법으로 낙태가 불법이었던 1800년대로 돌아간 것이다.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며 "국가와 법원에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의회가 연방 차원의 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해 달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급진적 공화당이 건강의 자유를 범죄화하기 위해 십자군운동을 벌이고 있다"며 "여성과 모든 미국인의 권리가 11월 투표용지 위에 놓여 있다"고 호소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헌법을 따른 것이자 오래 전에 했어야 할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이라며 "결국에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용감하고 옳은 판결이라면서 "헌법과 사회의 가장 취약한 이들을 위한 역사적 승리"라고 했다.

한편, 미국의 주요 기업들은 직원들의 낙태 원정 시술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미 최대 은행 JP모건 체이스는 지난 1일자로 돌린 사내 메모에서 "합법적 낙태"를 포함한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집에서 먼 곳으로 여행할 필요가 있는 미국 내 직원들에게 관련 비용을 부담한다고 공지했다. 

씨티그룹과 월트디즈니,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 마스터카드, 스타벅스, 알래스카항공 등 다수 기업이 다른 주에서 낙태 시술을 받은 직원들의 여행 비용을 사후 변제하겠다는 계획을 속속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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