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도 교수, 당시 교계 활동 연구 발표

 

11면_광주.jpg

▲광주 북구청 공무원들이 지난 4일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보름 앞두고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내 묘역에 태극기를 꽂고 있다.

 

41년 전 광주의 5월엔 교회가 함께 있었다. 

교인이 거리시위, 행진 등으로 항쟁에 직접 참여하는 동안 교회는 시민들의 은신처가 되거나 모금 활동, 소식 전파 등의 형태로 국가 폭력에 저항했다.

최상도 호남신학대 교수는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아 '5·18민주화운동과 광주지역 교회의 활동' 논문을 최근 발표했다. 

광주 내 교회의 항쟁 참여 형태를 알기 위해 2019년 기준 광주 소재 교회 1642곳의 주보, 당회록, 교회일지, 노회록 등을 전수조사했다. 

최 교수는 17일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소에 따르면 종교가 표시된 193기 중 개신교가 129기(66.8%)를 차지한다"며 "그런데도 아직까지 개신교의 민주화운동 참여 기록이 체계화돼 있지 않다"고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된 1980년 5월 18일은 공교롭게도 주일이었다. 

남광교회를 비롯한 광주 교회 다수가 시민과 학생을 숨겨주기 위해 문을 열어두고 은신처를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광주제일교회는 전남대 학생회가 '어떤 폭력과 방화도 막아야 한다. 광주 시민의 긍지를 살리자'고 방송하며 시민을 설득하는 장소로 사용됐다. 

항쟁의 마지막 날인 5월 27일에는 YWCA에서 밤을 새우던 여성 50여명이 인근 교회로 피신했다.

교회는 항쟁 기간 진행된 두 번의 주일 예배(5월 18일, 5월 25일)에서 시국에 대한 상황과 인식을 전했다. 

최 교수는 "개교회의 예배라는 공적 모임을 통해 교인들과 시국 인식을 공유하는 건 국가 폭력에 대항한 또 다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교회가 조직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 분야는 구호와 수습이다. 

5월 23일 목사와 장로 62명이 초교파적인 '광주시기독교수습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연행자 석방을 요청하는 한편 사망자·부상자 조사, 장례 거행 등으로 피해를 수습했다. 

교회는 고립됐던 광주의 소식을 기도와 헌금을 요청하는 형태로 외부에 알리는 역할도 했다. 

대표적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은 5월 19일 총회장이었던 조원곤 목사 명의로 전국 교회에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어 광주시민 돕기 헌금을 모금해 전국 교회 190곳에서 2100만원을 모아 광주에 전달했다.

최 교수는 "10일간의 항쟁 기간에 교회는 폭력과 부정의 현장에서 침묵하거나 방관하지 않고 항쟁에 개입하는 등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조용히, 우는 자와 동행했다'"고 평가했다.

한국노컷뉴스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