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발언 논란 제갈성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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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주님의 뜻입니다!”
지난해 2월 24일 아침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만m에서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순간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진 두 마디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이 말을 한 제갈성렬(41·춘천시청 감독) 당시 SBS 해설위원은 종교 편향 발언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방송 이후 자진 하차했다.
그리고는 악플과 비난에 시달리며 상당 기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그 사건 덕분에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고 노총각 딱지까지 떼버리게 됐다.
3년 전부터 결혼은 어렵다고 생각해 결혼 관련 기도조차 하지 않던 그였는데…. 인생 참, 아이러니다.
다음달 2일 동갑내기 치과의사 서민정씨와 결혼하는 제갈 감독, 그에게 지난 1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깔끔한 스타트
그는 80년대 후반부터 십여 년 간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종목에서 세계를 호령했던 간판스타였다.
하지만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다. 1992년 알베르빌, 94년 릴레함메르, 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메달은 때마다 그를 피해갔다.
올림픽만 앞두면 부상과 사고가 이어졌다. 불운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인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컸다.
출발이 좋았다. 모태범이 남자 500미터에서 금메달, 1000미터에서 은메달을 따냈고, 이상화는 여자 500미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승훈은 5000미터 은메달리스트가 됐다.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에 국민은 열광했다.
제갈 감독도 인기 몰이를 했다. 특유의 힘차고 활기찬 해설에 많은 국민이 환호했다.
특히 한국 선수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그가 외쳤던 “하나! 둘! 하나! 둘!” 구호는 어느새 온 국민이 따라하는 유행어가 됐다.
‘사고’가 있던 그날. 이승훈의 1만m 기록이 예상외로 좋았다.
다음으로 경기에 나선 스벤 크라머(25·네덜란드)는 세계 최강답게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빙판을 지쳤다.
레이스가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제갈 감독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한번씩 번갈아 들어가야 하는데 인코스에 두 번 연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실수는 초등학생 선수도 저지르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
이승훈의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감격한 제갈 감독은 소리쳤다. 그 두 마디였다. 그 순간 함께 진행하던 캐스터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곡선주로 - 삐끗
그의 빙판 인생 34년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겨낼 힘을 준 건 다름 아닌 신앙이었다.
“첫 올림픽 실패하고는 매일 국민일보 미션면 기사를 보며 마음을 다스렸어요. 두 번째 올림픽을 앞두고 치명적인 발목 부상을 입었을 땐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가 다시금 하나님을 만났고요.”
그는 순복음의정부교회 수석장로인 아버지와 권사 어머니 밑에서 기도와 함께 자랐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는 교회 친구들과 ‘전도특공대’를 만들어 의정부역 앞에서 매주일 수백 장의 전도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기간에도 전도특공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왜 그 때, 그 두 마디를 외쳤을까. “저도 모르게 나온 거죠. 다른 뜻이 있었겠어요?” 오랜 신앙생활 동안 마음에 농축돼 있던 무언가가 튀어나온 것, 그뿐이었다.
발언의 여파는 엄청났다. 악플이 인터넷 공간을 뒤덮었다. “제갈성렬이라는 사람은 하루아침에 죽일 놈이 되어 있더군요.”
구두 합의 단계까지 갔던 CF 5개가 날아갔다. 하지만 금전적 아쉬움보다 더 큰 아픔은 자괴감이었다. “저 때문에 크리스천이 ‘개독’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제 입술을 사용하셨는데 오히려 그분 이름을 욕되게 한 것 같아 고통이 컸습니다.”
대중의 비난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는 생각했다. ‘여자연예인들이 이래서 악플을 보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구나….’

다시 직선주로 - 서서히 속력을 내다
그는 두문불출했다. 평소 누구보다 밝고 쾌활한 그였지만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는 쉽지 않았다.
묵묵히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소속팀 춘천시청 선수를 가르치고 대학에 나가 강의하는데 열을 올렸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국제빙상연맹(ISU) 국제심판자격 시험공부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러던 중 김장환 목사가 진행하는 극동방송 ‘만나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 프로그램의 출연 섭외를 받았다.
갈등하는 그에게 순복음의정부교회 박종선 목사는 “타 종교에서는 역적일지 몰라도 기독교에선 영웅이잖아. 힘내고 나가서 진솔하게 얘기해보자”고 권유했다.
제갈 감독은 지난해 3월 고심 끝에 프로그램에 출연해 담담하게 자신의 신앙 이야기를 했다. 김 목사의 권유로 본의 아니게 공개구혼까지 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던 한 청취자가 있었다. 수술을 받고 병원에 누워 있던 한 교회 권사.
수술 후 깨어나 제갈 감독의 목소리를 듣고 큰 기쁨과 감동을 느꼈다. 그 권사(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는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동계올림픽 당시 딸과 함께 제갈 감독의 해설을 너무나 재밌게 들었기 때문이다.
방송을 다 듣고 난 뒤 그녀는 혼자 말을 했다. “밝고 쾌활한 목소리, 믿음 위에 굳건히 선 당당한 모습…. 그래, 이 사람이야. 이런 사람이라면 믿고 내 딸을 맡겨도 되겠어.”

마지막 스퍼트, 그리고 골인
기도 응답을 받은 느낌. 권사는 기뻐했다. 건강을 회복한 뒤 제갈 감독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당시 방송을 들은 많은 분이 자기 딸을 소개하겠다고 전화가 왔어요. 감사했지만 예의를 갖춰 거절했죠. 김 목사님의 권유로 그 분께만 전화 드렸습니다. 제 장모님이 되시는 거죠.”
지난해 4월, 권사의 딸 서씨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첫 만남, 제갈 감독의 첫 마디는 이랬다. “제가 부족한 게 많습니다. 합숙과 전지훈련, 국제심판 등을 하다보면 가정에 소홀할 겁니다. 저를 좋게 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지만 저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시기 바라요.”
만날 때마다 그는 말했다. 잘해줄 자신이 없다고…. 때로는 일부러 매몰차게 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다. “괜찮아요. 기도하고 있으니 힘내세요.”
지난 연말, 그는 조심스럽게 서씨에게 말했다. “힘이 돼 줘서 고마워요. 많이 부족하지만 노력할게요.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 뜻대로 살아보도록 해요.”
제갈성렬의 지난 1년,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전화위복이었다.
“목사님들이 저더러 베드로 같다고 하세요. 신앙에 있어서는 무조건 순종하고 ‘무대뽀’ 정신으로 나아가기 때문이죠. 지난 1년 동안의 일을 통해 많은 걸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만남을 통해 더 큰일을 계획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 뜻 따라 살아가야죠. 참, 그동안 민정씨한테 미안했어요. 이제부터는 누구보다 잘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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