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처절한 가난과 아픔, 실패까지도 아름답게 바꿔놓는다.
올해 부산외대를 졸업한 심현주(23)씨에게도 그랬다.
십대 시절의 그녀는 가난과 부친의 연락 두절, 왕따에 학교 중퇴까지 전형적인 인생의 낙오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다음달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그녀의 가슴속엔 이제 절망의 고통 대신 부푼 꿈이 자리하고 있다.
부친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운 심씨 가족은 중학교 1학년 때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거듭된 빚 독촉으로 1년에 한두 차례씩 단칸 셋방을 전전해야 했다.
지방에 살던 부친과는 아예 연락이 두절됐다.
가난 때문에 용모를 제대로 가꾸지 못했던 그녀는 반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했다.
결국 열네 살 중학교 1학년 나이에 학교를 그만뒀다.
학교 중퇴 후에도 가난과 자괴감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다.
심지어 쌀이 없어 김치 부침개로 매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부모 손을 잡고 쇼핑을 가거나 등교를 하는 학생들을 볼 때면 ‘행복은 평생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내성적인 성격은 더욱 안으로만 파고들었다.
그렇게 1년을 버티던 그녀에게도 희망이 찾아왔다.
동생이 빌려온 한 잡지의 기사를 통해서다.
토플이나 텝스 같은 영어점수만으로도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의 얘기였다.
 ‘영어만 잘하면 나도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때부터 영어는 그녀에게 희망의 근거로 자리 잡았다.
돈 안들이고 집에서 영어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TV였다.
2년 후 치른 첫 토익시험에서 그녀는 985점이란 고득점을 얻었다.
그리고 이어진 중학교 검정고시에선 전과목 100점을 달성했고, 고등학교 검정고시마저 합격하며 동료들보다 한 살이나 빨리 대학(부산외대)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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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 그녀는 주위사람의 권유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캠퍼스 안에 있는 대학교회(김영완 목사)였다.
심씨는 “교회를 다니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주일날 하루만이라도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교회 출석을 통해 그녀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신앙이 쌓아져갔다.
어릴 적부터 그녀의 마음을 꽁꽁 묶고 있던 팔자니 숙명이니 하는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두드리면 인생의 문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심씨는 대학 2학년 때 남해 아시아태평양 액티브 에이징 콘퍼런스 통역을 담당했다.
‘휠체어 여행가’ 스콧 레인즈 박사의 강의의 통역을 맡은 것.
그때 쏟아져 나온 노인문제는 그녀에게 사명감으로 각인됐다.
기후변화나 보건의료문제 연구물은 많지만 고령화사회에 대한 대안은 거의 없는 현실을 봤기 때문이다.
심씨는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좁은 길’을 걷기로 했다.
세계적인 노인학자가 되기로 한 것.
그때부터 그녀의 도전은 세계를 향했다.
지난해 10월엔 UN 청소년 한국대표로 선발돼 뉴욕 UN 본부에서 발표를 했다.
미국교육평가원(ETS) 장학생으로도 선발됐다.
세계적 인재들에게만 주어진다는 풀브라이트 장학금 수혜자에도 이름을 올렸다.
심씨는 “노인문제에 대한 소명감이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나를 가만히 있게 내버려두지 않았다”며 “하나님께서 소명을 주셨고, 그 소명을 위해 하나님께서 모든 걸 이루신 것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심씨는 지난해 부산외대 대학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행복은 멀리 있던 게 아니라 늘 내 곁에 있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고 했다.
인생의 밑바닥 순간에서도 함께했던 엄마와 여동생,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학교 중퇴까지 모든 고난을 감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심씨의 불굴의 인생 도전기는 ‘14살 세상 끝의 좌절, 23살 세상 속으로의 도전’(좋은인상)에서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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