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서울 ‘홈 스윗 홈’ 진행자 노형건씨

 

최장수·최고 인기프로 31일 고별방송
한인 커뮤니티 클래식 대중화 큰 영향
북가주 합창단 창단… 2월 순회집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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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년 동안 라디오 서울의 간판 프로 ‘홈 스윗 홈’을 진행해온 노형건(58·사진) 단장이 오는 31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홈 스윗 홈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무려 5,605회.
1993년 1월부터 만 18년 동안 매일 아침 10시부터 두 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해온 노형건의 홈 스윗 홈은 미주한인사회에서 명실 공히 최장수, 최고 인기 프로, 수많은 애청자들에겐 하루의 일상과도 같은 프로였다.
시사뉴스와 문화소식, 음악이야기와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적절히 섞어가며 자연스런 진행으로 인기를 끌었던 홈 스윗 홈이 고품격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오랜 세월 폭넓은 계층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노 단장 자신이 클래식 음악인이며, 오페라 캘리포니아 소년소녀합창단의 단장으로, 또 월드비전 홍보대사이며 찬양사역자로서 한인사회와 주류음악계 곳곳에서 쌓아온 경험과 열린 시각, 그리고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공연기획자의 연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만 두는 것일까? 혹시 그 유명한 아들 때문이 아닐까?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아니 아시안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에 두 번이나 오른 ‘파이스트 무브먼트’(Fareast Movement)의 리더 제임스 노 덕분에 이제 모든 일에서 손 떼고 편하게 지내려는 건 아닌지? 노 단장은 껄껄대고 웃으며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만 진짜 웃기는 얘깁니다. 걔한테는 지금까지 1불도 받은 거 없어요. 오히려 제가 돈만 많이 썼죠. CD 사서 사람들 선물 주고, 한 턱 내라는 사람들 밥 사느라고 엄청 썼습니다” 그는 아들과 FM에 대해선 “롱런 할 수 있는 음악인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 외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3~4년 전에도 그만 두겠다고 했던 적이 있어요.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어서요. 하지만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지 못해 계속해 왔는데 지금은 정말 그만 둘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방송을 그만 두는 건 아니에요. 방송은 평생 하고 싶은 일이니까요. 이 시대가 원하고 미주 동포사회에 꼭 필요한 방송을 하는 크리스천 엔터테이너가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노형건씨는 물론 처음부터 방송인은 아니었다.
바리톤 성악가요 ‘오페라 캘리포니아’ 단장으로서 LA 한인타운에 양질의 클래식 음악을 보급하겠다며 동분서주하던 시절, 방송은 꿈에도 꿔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1990년대 초 등대교회에서 찬양 인도하는 그를 보고 당시 라디오 코리아 편성국의 원창호씨가 “목소리가 좋으니 방송 한번 해보라”고 권유한 것이 시작이었다.
싫다며 두 달을 도망 다니는 데도 계속 쫓아다닌 원씨의 강권에 못 이겨 마이크 앞에 섰는데 그것이 방송 커리어의 시작이 될 줄은 그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라디오 코리아에서 ‘내 마음의 노래’라는 프로를 맡았습니다. 경험이 없어서 녹음방송을 했죠. 1년반 정도 하다가 그만 두고 나왔는데 얼마 후에 라디오 서울에서 새 프로를 맡아달라고 요청이 온 거에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홈 스윗 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끼고, 제 안에 있는 탤런트도 발견하면서 방송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음악처럼 소중한 제 삶의 한 부분이 된 거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홈 스윗 홈은 언제나 생방송이다.
라이브로 진행하는 일에 부담이나 스트레스가 없었느냐고 묻자 “스트레스로 느끼기보다 즐겼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생방송 프로에서 드물지 않은 방송사고 한 번 없었다고 하니, 독실한 크리스천이요 전도사이며 찬양사역자인 그를 이렇게 말하긴 좀 뭣하지만 못 말리는 끼와 철저한 프로의식, 재능, 순발력, 카리스마, 스타의식, 무대체질을 모두 갖춘 진정한 엔터테이너라 해도 좋겠다.
처음에는 클래식을 많이 틀었으나 세월이 가면서 다양한 청취자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대중음악 위주로 방송을 이끌어왔다는 노 단장은 그래도 한인 커뮤니티의 클래식 대중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점이 공로라면 공로일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8년 동안 그와 함께 일했던 PD는 모두 4명. 금근영, 김종문, 최정휘를 거쳐 현재 서문민혜씨가 1년반째 호흡을 맞춰오고 있다.
그 오랜 세월에 비하면 의외로 적은 편인데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가는 스타일”이라 마음과 손발이 맞는다 싶으면 오륙년, 칠팔년 함께 일하는 것은 보통이라고 한다.
특히 매주 금요일에 나오는 피아니스트 한학순 교수는 시작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함께 해온 최장수 고정 게스트다.
또 임상심리학 전문가 서니 송 박사와 여명미 박사, 국악인 지윤자, 하와이의 김명희씨 등이 모두 6~7년 넘어 출연해온 게스트들이라는 것.
가장 기억에 남는 초대 손님이 누구냐고 하자 황수관 박사를 꼽는다. “말과 삶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앙인으로 느껴졌다”는 게 이유.
연예인 중에선 두 번 출연했던 조영남씨가 ‘기인’으로서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가장 좋았던 목소리의 주인공으로는 가수 이미자씨를 꼽았다.
그야말로 벨벳 같은 목소리, “비로드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웠다”고 회상한다.
자, 이제 18년을 매일 출근해 왔던 라디오 서울 스튜디오를 떠나는 그는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스케줄을 들어보니 2011년부터 그는 그야말로 훨훨 날아다닐 예정이다.
우선 북가주 쪽에 새로 일을 벌였다고 한다. 샌
프란시스코에서 나오는 크리스찬 타임스(발행인 임승쾌) 산하에 ‘북가주 메시아 여성합창단’과 ‘오페라 노던 캘리포니아 청소년합창단’을 창단, 음악감독과 상임지휘자를 맡아 2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할 계획이다.
매달 두 번씩은 북가주에 다녀오게 된다는 그는 또 동시에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란 제목으로 8개 도시 순회집회에 나선다.
2월10일 LA 드림홀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샌호제, 라스베가스, 하와이, 그리고 서울과 일본까지 돌아올 예정.
이어서 2월14일부터 25일까지는 성지순례 팀에 합류, 11박12일 동안 ‘찬양과 은혜와 간증이 있는 지중해 그리스와 터키 여행’을 인도할 예정이다.
2010년 올해도 이틀 남았고 홈 스윗 홈 방송도 이틀 남았다. 마지막이 될 12월31일의 홈 스윗 홈은 특별한 프로로 준비하고 있을까?
“언제나와 똑같이 할 것입니다. 금요일이니까 한학순 교수가 나오실 거고, 저도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신 라디오 서울과 애청자들, PD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돌아올 땐 더 좋은 방송인으로 컴백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 약속을 꼭 지키기를 기대한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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