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일 (9월 26일 목요일) 
오르니요스에서 카스트로헤레스까지 2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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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계속 메세타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어제 배낭을 다 싸두었다.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사과, 오렌지, 바나나, 크래커로 아침을 먹고 새벽 6시30분 알베르게를 나섰다. 벌써 여러분들이 같은 전략으로 떠나기 시작한다.

오늘도 새 날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며 감사드린다. 
어둠이 걷히지 않는 길을 걸으며 아이패드에 다운로드된 찬양을 듣는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다. 

그 다음 말씀을 듣는다. 첫날 창세기에서 시작해서  오늘은 느헤미야서 까지 들었다.

신선한 새벽 자연의 광대함이 펼쳐진 거친 광야 메세타를 지나며 인간에게 주신 다섯가지 감각과 마음, 영혼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세계를 느껴 보고자 했다.

열심히 잘 걸어서 카스트로헤레스에 정오에 도착했다. 
이곳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 산 에스테반에 가장 먼저 짐을 풀었다. 주방은 없지만 모든 시설이  깨끗하게 잘 갖추어져 있다. 

무엇보다 WiFi 가 되어 기뻤다.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스페인 기독교 역사를 찾아 꼼꼼히 살펴보았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스페인 중세 때 영웅 '엘시드'에 대해서도 찾아보았다. 

부르고스 산타마리아 대성당에 엘시드와 그 부인이 안치되어 있었다. 
국민적인 영웅이라는 뜻이다. 
어렸을 때 보았던 찰튼 헤스턴, 소피아 로렌이 주연했던 영화가 생각 났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오전 시간 내 걸으며 묵상, 기도한다. 

오후 시간은 한적한 중세 마을 수도원 같은 알베르게에서 휴식하면서 독서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시간이다. 이것이야말로  멋진 일석이조가 아닌가!  
안식월 보내기에 참으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진정 감사드린다. 
할렐루야!




제16일 (9월 27일 금요일)
카스트로 헤리스에서 프로미스타까지 2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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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있으면서 제일 힘든 것은 역시 음식이다. 
대부분이 작은 마을에 머무는데 어떤 마을은 조그마한 마켓도 없다. 
가끔씩 보면 육류를 파는 냉동차가 오거나 빵과 캔종류, 스낵들을 파는 차들이 오면 주민들이 나가서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지역은 알베르게에서 조그만 상점을 갖고 있을 때가 있는데 거의가 캔에 든 음식이고, 과일은 사과, 오렌지, 토마토 정도를 갖다 놓는다. 

야채는 감자, 양파, 그리고 바짝 마른 당근 수준이다. 순례자들을 위해 그나마 준비한 것이다. 
알베르게에 부엌이 있어 순례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 그나마 직접 나름대로 요리를 할 수 있다. 

문제는 부엌이 없는 경우는 마을에 딱 하나있는 Bar &식당에서 Pilgrim's meal(순례자들 위한 저녁식사)라고 해서 어느 곳이나 거의 같은 메뉴의 음식을 약 10유로 정도를 내고 사먹어야 한다. 

스페인에 와서 신선한 샐러드를 먹을 수 있었던 대도시 3곳을 빼면 항상 하얀 프렌치 브래드(이곳의 빵은 겉이 딱딱하고 과자처럼 부서진다. 

아마도 신선한 빵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에 햄을 넣어서 물과 함께 먹는다. 
신선한 야채가 너무 먹고싶었다. 특별히 양상추가 너무 먹고 싶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남편이 슈퍼마켓을 찾아서 시장을 봐오는데 항상 양상추가 있는지 찾아보는데 없었다. 

오늘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유머를 사용하셨다.
아침 6시경 떠나 열심히 걸어 11시경이 되니 알베르게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있는 마을에 들어섰다. 

지치고 아픈 다리를 쉬기 위해 그 곳에 들렸다. 더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중간쯤 가다가 지쳐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 나를 위해 내 짐에서 또 짐을 꺼내 자기 짐에 넣었다.

이미 무거운 것은 다 본인이 매고 가는데...  "마누라 짐을 더 넣으니 가방이 더 가벼워졌다"고 농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미안하기도하고 고맙기도 했다. 

카페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6.4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오늘의 목적지 프로미스타를 향하여 갈려고 나섰다.

곧 도착할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걷기 시작했는데 마을을 벗어날 즈음에 땅에 무엇이 떨어져 있었다.양상추가 들어있는 비닐 봉투였다. 

미국에서 파는 양상추였다. 

이 작은 마을에서는 살 수 없는 것인데...
아마 순례자 중에 누가 떨어뜨린 것인가? 
일단 집어서 내 배낭에 달았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순례자가 지나가다 보고 자기 것이면 말할 수 있도록.... 
목적지까지 도착하도록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유머로 기적을 베푸신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토록 먹고 싶었던 양상추에 살라미를 싸서 남편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하나님의 섬세함이 깃든 점심 식사였다. 

양상추를 잊어버린 순례자는 목적지의 상점에 하나님께서 양상추를 준비하셨을 줄 믿는다. 
할렐루야!




제17일 (9월 28일 토요일) 
프로미스타에서 카리온까지 19.6Km

스페인은 보통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시에스타"라 해서 가게들이 문을 닫고 5시에 다시 문을 연다. 

시에스타(Siesta)란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 국가와 남아메리카 즉 라틴 문화권의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오후 낮잠'을 일컫는 일종의 생활 풍습이다. 우리도 휴식 후에 6시경 마켓에 가서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식사거리를 사려고 나갈려는데 갑자기 마을 전체가 정전이 되었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인가 생각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마켓으로 갔더니 정전이라고 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난감했다. 
우리에게 있는 음식이라곤 비스켓 5개, 비프저키 작은 반봉지, 작은 복숭아 3개, 점심때 먹고 남은 포도 조금뿐이었다. 

대강 어떻게 해보기로 했다. 하나님이 주신 양상추의 은혜가 아직도 충만하며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어제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아침이 되니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순례길에 여러가지 기후를 맛보게 된다고 해서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판초가 있으니 덮어쓰고 가면 된다. 감사한 것은 오늘은 19.6km만 걸으면 되니 얼마나 감사한가! 

같이 길을 가는 순례자들도 같은 마음인지 지나가면서 밝은 목소리로 "Buen Camino"(좋은 여행되기 바랍니다 또는 축복된 순례길 되시기 바랍니다) 하며 지나간다. 

비를 흠뻑 뒤집어 쓰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순례자들도 밝은 얼굴로 포즈까지 잡는다. 생각해보니 어릴때 비맞고 놀은 기억이 났다. 참 좋아했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창가에 앉아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 우수에 잠겼고...  한번도 용기있게 비를 맞아보지 못했는데 오늘 드디어 비를 맞고 약 6시간을 걸어본 것이다. 

감사가 저절로 우러러 나와 남편이 비디오를 찍을때 장난기를 발동했다. 
정말 신이 났다. 그 힘으로 빗 속을 잘 걸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3일전에 사놓았던 봉투 스프를 꺼내 주방에서 끓였다. 늦은 점심을 했다. 
오랫만에 따뜻한 국물을 먹을 수 있어 우리 둘은 정말 행복했다. 

저녁에는 성당에서 음악회가 열린다고 해서 기대가 된다. 지금은 알베르게 안에서 조용히 묵상하며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을 한다.

"아버지,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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