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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쾌 장로


아직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전라남도 여수의 애양원 교회에서 우리 글로벌 메시아 여성합창단원과 미주 성시화 임원들이 그 교회성도들과 함께 주일예배(10월 20일)를 드리던 광경이 너무나 생생합니다.

아니 한달을 훌쩍 뛰어 넘고 일년이 지난다해도 애양원 교회(지금은 성산교회)에서의 주일 예배는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13 서울 국제 성시화대회에 초청을 받고 한국에 온 글로벌메시아 여성합창단은 그동안 서울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명성교회, 사랑의 교회에서 찬양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양화진, 임진각등지에서 기도회에 이어 평택 순복음교회, 전주 바울교회에서 연달아 찬양예배를 드렸습니다.

순천을 거쳐 여수에 도착한 20일(주일) 오전은 우리 모두에게 육신의 피로가 확 퍼져있어 제 눈으로 보기엔 우리들의 걸음걸이도 생기가 없어 보였습니다.

예배시간 훨씬 전에 도착해 교회 건물앞에 놓여있는 몇개의 긴의자에 잠시 몸을 기댄 단원들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습니다.

건물 왼쪽에 붙어있는 종탑에서 주일예배시간을 알리는 종이 댕그렁 댕그렁 울리기 시작하자 모두의 눈이 그 종탑쪽으로 향했고 신기한 듯 한동안 물끄럼이 그것을 바라보고들 있었습니다.
그 종의 울림에서 우리 단원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미국에서 보지 못한 교회종?...아마 눈으로만 보이던 교회종이 아닐거라고 상상해 봅니다.)

줄을 지어 예배당에 들어서면서 우리들은 미리와 앉아있던 성도들을 흘낏흘낏 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병으로 고생하다 치유가 돼 짙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예배시간을 기다리던 성도들이 이곳 저곳 여럿 보였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곳까지 찾아와 같이 예배 드림에 감사하는 마음을 그들에게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사랑안에 거하라"라는 주제로 말씀을 선포하시던 젊은 정종원 목사님.
그날 우리 메시아 합창단의 찬양도 화답하듯. "서로 사랑하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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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애양원 교회하면 우리들에게 결코 잊혀질수 없는 목사님이 떠오릅니다.

고 손양원 목사님.

지난 1939년 애양원 교회에 부임한 고 손양원(1902`-1950) 목사님은 그곳에서 11년 2개월간을 목회하시며 일제 강점기의 심한 고난도 겪으셨습니다.

여수시가 건립한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관에 들어가 목사님의 신사참배 거부로 인한 감옥생활의 참상과 순교할때까지 한샌병환우들과 교회를 지킨 60여년전의 기록들을 둘러보며 많은 것들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제 앞에서 기념관을 둘러보시던 박희민 목사(미주 성시화 운동본부 대표회장)님께서 고 손목사님의 옛 사진들과 기록들을 보시며 이번 우리들 사역이 "피곤하다, 좀 힘들다."하던 푸념들이 오히려 미안할 정도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같은 동리에 거주하는 사실조차 꺼리며 나병환자를 쫓아내던 시절, 손목사님은 그들의 환부를 만지고 심지어 입으로 고름까지 빨아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이 아니고서는 결코 상상할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또 여순 반란사건때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두아들을 잃었지만 "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아들의 친구이자 두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았던 이야기는 우리 기독교계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깁니다.

광주 본향교회에서 주일 저녁 찬양예배를 끝으로 사역일정을 마친 우리들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정말 한나절의 쉼도 없이 계속된 7박8일간의 찬양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의 육신은 피곤했을 지언정 마음들은 모두 감사가 넘쳐 흐르는 모습이었습니다.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이번 사역가운데 애양원교회에서의 찬양예배가 제일 감격적이었고 감동이 크게 넘쳐 흐른다고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감동이었습니다.

누구도 거들떠 보지도 않던 한 나병환자를 사랑으로 돌본 포사이드(윌리 해밀튼 포사이드)선교사의 사랑이 한국최초의 나병환자 병원과 "애양원"을 건립하게 된 동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보살피는 동산" 이라는 뜻의 애양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이 주신 말씀의 천만분의 일도 우리들은 실행치 못하고 있지만 애양원이라는 이름을 나직히 불러보며 맘속 깊히 깊히 그 이름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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