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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심장부에서 영화를 누리던 주 선교사는 부족한 게 없었을텐데 왜 탈북을 하게 됐을까? 
첫사랑의 아픈 상처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어느 날 김일성 역을 맡은 배우가 주 선교사에게 다가와 사랑을 고백했다. 

처음 들은 고백이었고 나이도 어릴 때였다. 

그러나 사랑과 결혼도 당의 허락없이는 허용되지 않는 북한 상황에서 둘의 사랑은 오히려 서로에게 독이 됐다. 

당이 허락하는 혁명적 사랑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자 배우가 배역을 내려 놓고 사라졌다. 
그녀에겐 이 일이 아픈 상처로 남았다.

1994년에는 대형사건이 터졌다. 

김일성이 죽었다. 

그때부터 평양의 모든 것이 드러났다. 

김일성 사망 전까지만 해도 억제됐던 나라의 생생한 소식들이 눈으로 확인되기 시작했다. 

기근이 시작되면서 군인들이 평민들 집에 뛰어들어 개·돼지를 훔쳐가는 일이 발생했다. 

매일 40~50명이 굶어 죽어갔다. 

거리와 마을과 역전에 굶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나뒹구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주 선교사는 김일성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김일성이 사망했기 때문에 닥친 어려움이라고 여겼다. 

기근이 길어지면서 연예인들의 생활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주 선교사는 당의 선전, 선동 부대로서 경제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중국 무역을 시작했다. 

중국에 처음 출장 갈 때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에서 북한처럼 잘 사는 나라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중국의 풍요로움을 보면서 너무나 놀랐다. 
점점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구나’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고민이 시작됐다. 

“왜 우리 연예인들이 순수하게 당을 따르고 청춘을 바치는데 이렇게 배를 채우지 못하고 쓰러져야 하고 죽어가야 하는가?” 

중국을 오가다 식당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겼다. 

그녀의 엔터테이너적 기질이 살아났다.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팁이 들어왔다. 

처음엔 돈을 받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감사해서 주는 팁이다”며 “받는 것이 예의다”고 가르쳐줬다. 

정말 돈이 쉽게 들어왔다. 

어느 날 식당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조선족 한 명이 다가왔다. “저기 테이블에 있는 분들이 동무를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그 자리로 가서 인사를 나눴다.

“이렇게 만나게 돼 반갑습니다.”
“와! 북한 말 들으니 너무 좋아요. 게다가 남남북녀라 했는데 북한의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니 더욱 반가워요.”

그런데 그분은 “하나님 아세요?”라고 물었다. 

주 선교사는 이때 처음 하나님에 대해 들었다. 

밝고 천진하게 “하나님이 누구예요?”라고 말했더니 “이 세상을 지으시고 인간도 만드신 분이다”는 답이 돌아왔다. 말이 너무 어려웠다.

“어렵게 말하지 말고 간단하고 쉽게 설명해 주세요!”

주 선교사의 말에 풍채 좋은 그 남자는 “당신 같은 사람 처음 봤어요. 왜소하고 주눅이 든 북한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행복해 하고 씩씩한 북한 사람의 모습은 정말 생소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땅이 피폐해지고 백성들은 굶주리고 있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잠시 주 선교사는 생각해봤다. 
북한과 중국 땅이 비교가 됐다. 

‘두만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한쪽은 땅이 기름지고 푸르고 싱싱하다. 그 생동감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시장에 널려 있는 먹을 것들을 보라.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주 선교사에게 상대는 선물이라며 포장지로 곱게 싼 물건을 건네줬다. 

가슴이 설레 호텔에 와서 혼자 뜯어봤다. 

‘예쁜 옷?’, ‘액세서리?’ 등등 많은 기대를 했는데 포장지를 뜯어보니 성경책이었다. 

‘성경? 이게 뭐야? 영어를 번역한 건가?’ 

생각하며 펼쳐봤다. 

평소 주 선교사는 책을 펴면 맨 앞장을 보고 뒷장을 보는 습관이 있었다. 

맨 앞을 보니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이 있었다. 

뒷장을 펼치니 십계명이 눈에 띄었다. 

북한에서 줄줄 암송했던 십대 원칙과 비교가 됐다.

“너는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여야 한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 “김일성동지를 충성으로 높이 우러러 모셔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김일성 동지의 권위를 절대화하여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김일성 수령 동지의 권위를 높이는 10대 원칙과 성경의 십계명이 비교가 됐다. 
특히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6계명부터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성경을 덮고 나서도 ‘십계명’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후 주 선교사는 남한의 선교사를 통해 주일 성수, 감사헌금, 십일조를 배웠다. 

주 선교사의 신앙생활에서 교회생활, 감사헌금, 십일조는 살아가는 재미이자 삶이 됐다. 

심지어 예배 시간이 아니어도 수입의 십일조를 한다는 마음으로 교회를 찾아간 적도 있다. 

교회를 찾아가자마자 “십일조를 받는 곳이 어딥네까?”라고 묻기도 했다. 

교회 직원이 당황할 정도였다.

이렇게 순수하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목숨을 건 탈북 이후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자신을 사용하신다고 고백한다. 

한국을 비롯 미국ㆍ일본 등에서 총 1천 700여 회의 간증집회를 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위로’가 되라는 마음을 뜨겁게 주신다고 고백한다.

이를 위해 그녀는 간증을 3부로 구성해서 진행한다. 

1부는 북한에서의 삶을 모노드라마처럼 진행한다. 

2부는 하나님을 만난 간증이다. 

3부는 대한민국 땅으로 와서의 간증이다. 

간증과 더불어 악기의 향연이 벌어진다. 

바이올린, 가야금, 피아노, 기타로 찬양ㆍ가곡을 소화한다. 

한국에 와서 그녀는 <축복의 땅으로>(예찬사)라는 책도 두 권 냈고 시조신인으로 등단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기자에게 말한다. 

“이민 사회에서 간증을 하며 느낀 거예요. 

해외 교민 중에 너무 신실한 분들이 많아요. 그들의 마음이 늘 갈급해요.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바쁘다 보니 그 간증이 그 간증이겠지 하는 분들도 많은 거 같았어요. 그런데요. 제 간증은 듣기만 하면, 감동과 감사가 터져 나올 거예요. 

교민분들도 초대교회 성도들의 뜨거운 마음을 갖고 참석해서 우리 시대의 사랑과 축복과 사명의 메시지를 받아서 우리 할 일을 찾고 축복의 주인공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지금 그녀에게는 기도제목이 있다.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자유의 땅에 올 수조차 없었다. 

모든 가족이 한국 땅에 모여 찬양하며 경배하는 가정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북한의 하나님을 모르는 불쌍한 영혼들이 집다운 집, 밥다운 밥을 먹을 뿐 아니라 주체사상만을 암송하는 그들이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십계명을 암송하고 변화되고 구원받는 날이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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