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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택 장로


북가주 생명의 전화는 상담봉사원 계속교육에 이연택장로(서울서적 사장/언론인)을 초청하여 “미국 땅에서 이민자로 나이 든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 

이연택장로는 유학생으로 미국생활을 시작해서 오랜시간동안 미주한인 언론인으로 지내다가 최근에는 책을 소개하고, 책을 보급하는 일로 수고하고 있다. 

이장로는 생명의 전화에 초청되어 자신이 경험한 이민자의 정체성과 또한 이민자로서 미국 땅에서 어떻게 아름답게 노년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들을 함께 나누었다.    
   
  <대담: 서해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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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장로님도 은퇴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살아온 횟수가 한국에서 살았던 시절보다 더 많아지고 또한 미국에서 노년을 맞이 하는 것이 1세대가 맞이하는 보편적인 상황이라 사려됩니다.  
미국에 이민온 한인들의 이민사를 언론인의 입장에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 겠습니다.
 
이연택 장로 : 한인들의 미주 이민은 시기에 따라달랐습니다.  
경제적인 형편은 초기에서 후기로 오면서 전반적으로 나아졌습니다. 
당연한 현상이죠. 

그런가 하면 공동체적 의식은 점점 희미해 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기 이민의 시기는 조국이 일제 강점기였습니다.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 독립운동 지원 및 참여가 공동체 정신이 되었습니다.
 60년대에서90년대까지의 중기이민의 시기는 소위 말하는 ‘아메리칸드림’의 이민입니다. 
미국에 가면 잘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형제 자매 초청이 열리면서 가장 많은 이민이 이뤄진 시기입니다. 
미국에 이민오는 사람들을 모두들 부러워하던 시기입니다. 

이때는 초기 이민의 독립운동만큼 강력한 공동체적 목표나 의식은 아니지만, 인터넷 시대가 열리지 않았던 때이기 때문에 조국에 대한 향수가 한인들의 공통적인 정서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한인회, 향우회, 친목회등이 성했고 한인들을 대상으로하는 비즈니스도 이때가 절정이었습니다. 

교회도 이때 가장 많이 부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천년대부터 후기 이민이라고 하면, 그 형태는 크게 달라집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전세계가 동시에 통합니다. 

조국의 소식이나 예술, 연예의 정서가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시대가 온겁니다. 
더 이상 조국이 그리운 시대가 아닙니다. 

이런 추세와 연관이 있겠습니다만, 각 개인들은 더 이상 공동체를 통해 뭔가를 얻고 느끼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개인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은퇴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지금은 중기 이민자들이 대거 은퇴하는 시기입니다. 
고생은 했지만 어쨌거나 아이들 잘키워서 다 내보내고, 부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미국에 산 세월이 한국에서 산세월보다 길어졌습니다. 
이젠 미국에서 어떻게 나이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때가 된 것입니다. 


기자 : 이민자들이 직면하는 문제가 '단절된 추억'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한국에서의 추억은 있는데, 미국에서의 아름아운 추억 대신 , 생존하기 바쁜 생활로 인해 추억의 단절을 경험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같이 미국에서의 단절된 추억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연택 장로 : 사람들에게 추억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저 단순하게 좋았던 과거를 떠올리는 차원으로 끝나는게 추억이 아닙니다. 

숱한 삶의 순간들 중에서 우리의 기억망에 걸려있는 추억이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추억하는 가로 그 사람의 현재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억이 각각 끊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연결성이 있습니다. 
추억은 지난 삶을 바라보게 하고 현재의 삶에 동력이됩니다. 
추억은 인생을 전체적으로 승화시키는 작용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추억은 여유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추억은 생존을 위한 일터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생활에서는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로 이민자들은 추억이 단절된 사람들입니다. 

추억을 만들기엔 미국에서의 삶이 너무 버거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추억이란 한국에 있을 때의 것들만 있는 셈입니다. 

바쁠 때는 잘모릅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이젠 본의든 아니든 시간적 여유가 생기게 되면 ‘단절된 추억의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미국에서 왜 살았나? 제대로 살았나? 왜 이렇게 허무하지? 하는 등 스스로 갖는 회의적 자문은 미국에서 추억을 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국을 즐기며 사는 것입니다. 
미국이 돈버는 현장이 아니라 내 삶을 즐기는 터전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흔히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고 하는데,  이말은 이민자들이 와서 경제적으로 윤택함을 누린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이 나라의 문화, 정서가 그렇다는 겁니다. 
언어의 불편함을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 미국만큼 언어의 미숙함을 이해해 주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입을 다물어서 그렇지 내가 표현하면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고 알아들으려고 노력합니다.
미국 역사도 공부하고, 이곳저곳 여행도 하고, 박물관도 들러보고, 심포니도 감상하고, 스포츠 경기도 구경가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미국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 땅이 낯선 땅이라는 생각을 지우고, 이 땅이 내 땅이며 내가 뼈를 묻을 곳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기자 : 장로님께서는 의미있는 추억을 남기는 것 중에 ‘카이로스의 체험’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카이로스의 체험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연택 장로 : 우리가 기초 수학으로 배웠던 대로 가로를  X좌표, 세로를 Y좌표로 한다면,  X좌표는 크로노스적 시간입니다. 

그리고 Y좌표가 카이로스적 시간입니다. 
가로 오른쪽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하루, 한달, 1년, 10년 이런식으로 갑니다. 

그런데 그 위로 찍히는  Y좌표는 모든 사람이 다 다릅니다. 
그 사람만의 의미이며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이 카이로스가 중요합니다.

위에서 말한 아름다운 추억도 이 카이로스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인생이라는 비즈니스에서의 이윤은, 이 카이로스적 시간,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상의 생활에서도 카이로스적 체험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카이로스적 체험은 노력을 통해서도 얻게되지만, 어떤 것들은 전혀 예기치 않게 강력하게 오는 수 도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삶에서 가장 강력했던 카이로스의 체험을 꼽으라면 제 두 아들과의 경험이었습니다. 

우연하게 경험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으며, 누구나 경험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메모리얼데이 연휴 때 였는데, 밖에 나가 사는 두 아들이 집에 왔습니다. 

오랫만에 만난 3부자가 아침에 일찍 골프를 치러 나갔습니다. 
백나인홀을 돌았습니다. 

골프장엔 우리 밖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다가에 인접한 골프장이었는데 마침 안개도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셋이 모두 골프는 초보수준입니다. 

스코어는 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공도 여러 개 잃어버렸습니다. 

그런 것과 상관 없이 골프백을 매고 함께 두런두런 얘기를 하며 골프장을 걷는 우리들은 기분이 몹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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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전화 계속교육에서 강의 중인 이연택장로

그러던 도중에 제 마음에 형용할 수 없는 평안함이 찾아왔습니다. 
정말 묘한 행복감이었습니다. 

마치 두 아들과 제가 영혼적 교류가 있는 듯한 그런 자유함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얼마나 예쁩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제가 아이들과 보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류의 경험은 처음인 것입니다.

저는 그때까지 어디에서도 그런 극치의 행복감을 경험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경험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벌써 1년도 훨씬 넘었지만, 저는 그 느낌을 지금도 그대로 살려내 다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 신기한 것은, 그때 경험이 너무 좋았으니까 또 그런 골프를 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류의 경험은 아마 한번으로 충분히 위력적인 모양입니다.  
물론 두 아들이 저와 같은 경험을 했을리도 만무하죠. 

모르긴 몰라도 제가 이땅에 살아있는 동안에 가질 수 있는 경험 중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카이로스적 체험이 갖는 특성은 지속성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경험은 다시 그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지만, 카이로스적 경험은 그것 자체로 완결되고, 그 기쁨이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카이로스의 체험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정말 강력한 체험은 그 사람의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카이로스의 체험은 영원성이 있는 겁니다. 
신을 만나는 체험이라든지, 갑자기 세상의 안개가 모두 걷히면서 안보이던 것이 보이는 체험 등은 그 당사자에게는 지속적이고 영원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기자 : 노년을 아름답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장로님이 이해하시고 있는 죽음에 대해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연택 장로 : 저는 우리가 죽음을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은 삶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음 앞에 누구나 섭니다. 

그리고 죽음은 실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그 죽음의 실체를 파악하려고 합니다. 
도대체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이 물음에 아무도 답하지 못합니다. 
죽어봐야 아는 겁니다. 

그런데 죽은 후 안것은 산자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완성이라는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죽음을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에게 마찬가지이지만, 그것을 삶의 끝으로 보는 사람과 완성이라고 보는 사람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완성이라는 말에는, 그 후의 것에 대해 편안하게 기대한다는 뜻이 포함됩니다. 

내 삶을 완성했으므로 다음 것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며 그것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고 죽음에 대해 걱정할 때 즈음이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잘 죽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우아하게 죽고 싶어합니다. 

우아하게 죽는 방법은 우아하게 사는 겁니다. 
삶이 엉망이었는데 죽음만 우아한 법은 없습니다. 

‘죽음의 여의사’로 불리우는 엘리자베스 퀴블로로스가 있습니다. 
그는 호스피스에 있는 환자들을 수천명 돌보고 인터뷰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죽음을 맞는 과정을 애벌레가 고치를 틀고 궁극에는 거기에서 나비로 변해 하늘을 나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비가 되는 과정에서 어떤 애벌레는 몹시 길고 또 고통스런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애벌레는 비교적 쉽게 나비로 날아 오르기도 합니다. 
그 여의사 자신도 죽기까지 몇 년동안 질병으로 무척 고생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비유에서 늘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죽음은 그야말로 절대자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삶이지 죽음이 아닙니다. 

오로지 우리는 그 삶을 완성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기자 : 일전에 장로님과 사후에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나눈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내용의 책들을 소개해 준 것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가 실지로 존재한다는 책의 내용이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후의 세계에 대한 장로님의 이해를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연택 장로 : 저의 사후에 대한 이해는 이렇습니다. 
저의 영혼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 영혼이 저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본향인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말할 때 보통은 육신의 생명을 말합니다. 

그런데 생명은 영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땅에 살아있을 때는 그 생명이 몸안에 있지만, 사후에는 그 생명이 영혼 안에서 계속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께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도 그런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이해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또 그 나름대로 이해가 있겠죠.
아무튼 최근 들어서는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증언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서 임사체험이 더 늘어난 것은 아닐 것이고 아마 미디어, 출판등의 발전으로 그런 독특한 경험이 더 쉽게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저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임사체험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듯이 영혼에 반응하는 감수성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임사체험은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그 당사자의 특수한 상황, 영적 감수성 등등이 우연하고도 적절하게 이루어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저는 그런 류의 책을 많이 읽었지만, 그래서 사후의 세계를 믿는건 아닙니다. 

그런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읽어보도록 권하기도 하지만, 그러니 사후의 세계를 믿으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영적세계, 사후세계는 각자의 체험과 깨달음으로 그 사람의 것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적세계나 사후세계는 무슨 틀에 짜여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존재적 논의는 가능하지만 구체적 사실로 적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 마지막 질문입니다. 
노년을 함께 맞이 할 수 있도록 공동체적인 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말씀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장로님이 구상하고 있는 노년을 위한 공동체 모임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연택 장로 : 공연히 공수표가 될 것같아 조심스럽습니다만, 노년을 위한 공동체는 특히 우리같은 이민 세대들에게는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나이들어 갈 것인가, 하는 고민을 같이 해보자는 것입니다. 
같이 배우고, 같이 의미를 찾고, 같이 논의하다 보면 우리의 생각과 생활의 지평이 넓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어마하게 많은 이슈가 있습니다. 
섣불리 이거다, 저거다 하긴 어렵습니다. 

일단은 초기 단계로 공부하며 나이드는 모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 공부가 그냥 지식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에 영향을 주는 공부가 되어야겠죠. 
저의 또 다른 개인적 계획도 있어서, 제가 노년을 위한 공동체에 얼마나 정성을 들일 수 있는가 하는 것도 고민입니다. 

아무튼 노년을 위한 공동체는 절실한 것은 사실이며, 일단 뜻이 있는사람들 끼리 의 기투합하는 단계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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