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비해 종교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 낮지만

그래도 일반인은 "성직자 다움"에 대한 기대는 안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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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주교 대전교구 박주환 신부가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합성 사진.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전용기에서 추락하는 모습과 함께 “비나이다~ 비나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신자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최근 천주교계 인사들에게 듣는 이야기입니다. 

지난주 대전교구 박주환 신부가 자신의 SNS에 대통령 부부가 전용기에 떨어지는 합성사진과 '비나이다~ 비나이다~'라는 'SNS 저주 글'을 올린 논란 이후의 일이지요. 

"미안하다" "창피하다" "냉담(천주교 신자이지만 미사에 참석하지 않는 일)이 길어질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지난주 논란이 벌어지자 천주교 대전교구는 '비교적' 신속히 움직인 편이었습니다.

교구장 김종수 주교 명의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박 신부를 '정직(停職)' 처분했지요. 

미사와 고해성사를 금지시키고 교회 안팎의 공적 활동을 금지했습니다. 

그렇지만 사제 신분은 유지됐습니다. 

대전교구의 결정이 쉽지 않은 것이었임은 이해합니다. 

사과문에 '오랜 시간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될 것' '박 신부의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며 보다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적어 정직 기간이 짧지 않을 것임과 경우에 따라 정직보다 높은 단계의 징계, 즉 면직(免職)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달랐습니다. 

'고작 정직이냐'는 항의가 이어졌지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종교와 성직에 대한 일반 사회의 미묘한 시선 변화가 느껴집니다. 

과거에도 일부 사제의 일탈이나 정치적으로 편향된 언행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도대체 어떻게 신부가..."라는 반응이 많았지요. 

그런데 이제는 "천주교는 뭘 하고 있나?"란 반응이 많아졌습니다. 

"추기경은 이런 신부를 그냥 놔두나?"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지난 주말 성당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장소가 성당이어서인지 피로연장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비판의 화살이 과거 '개인'에서 '천주교의 시스템'으로 옮겨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런 말은 물론 천주교가 교구(敎區)별로 자치적으로 운영되는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천주교는 전국에 지역별로 15개 교구가 있습니다. 

군종교구도 따로 있지요. 

각 교구는 인사와 재정이 독립적입니다. 

김수환 정진석 염수정 추기경은 모두 서울대교구장이었습니다. 

유흥식 추기경은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이고요. 

일반적으로는 추기경이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다른 교구의 일에 관여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질문에서 새겨봐야 할 점은 일반 국민들에겐 '천주교'는 하나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일반인들은 이제 천주교의 사제 선발·교육·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묻는 것이지요. 

이런 반응은 천주교 자체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사태는 대한성공회와도 비교됐습니다. 

성공회 역시 교구별로 운영됩니다. 역시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하기를 기원하는 'SNS 저주글'을 올렸던 김규돈씨는 대전교구 소속이었습니다. 

성공회는 지난 14일 오전 김씨의 SNS 저주 글이 논란이 되자 당일 '직권 면직' 조치를 내렸습니다. 

사제 신분을 박탈한 최고 수위 징계였습니다.

천주교 박 신부 'SNS 저주 글'은 같은 날인 14일 오후에 알려졌지요. 

천주교의 처리 속도나 강도는 성공회와 달랐습니다. 

하루가 지난 15일 오후 천주교 대전교구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정직'처분 결과를 알렸습니다. 

그런데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16일 "교회가 박주환 신부를 내팽개쳤다. 숙청당한 기분"이라며 박 신부를 옹호하는 글이 나온 것입니다. 

탈핵천주교연대 공동대표 박홍표 신부의 SNS 글이었습니다. 

박홍표 신부는 윤 대통령 부부가 전용기에서 떨어지는 모습의 합성사진을 올린 것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 부부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극단적인 패러디를 한 것"이라고 두둔했습니다. 

과연 문제의 SNS 게시물을 보면서 단순히 "패러디"라고 느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 사회도 한때 성직자의 "입"을 쳐다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언론자유조차 얼어붙었던 군부독재 시절 김수환 추기경의 한마디는 국민들의 막힌 속을 뚫어주곤 했지요. 

그래서 1970~80년대 천주교 신자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배경으로 '김수환 효과'를 꼽는 이가 많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등을 통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넘어 방종을 우려하게 만드는 시대입니다. 

자신의 '저주 글'에 대해 비판한 댓글을 모아놓고 '반사~'라고 조롱하는 게시물을 올리는 사제를 보면서 '나도 천주교 신자가 되고싶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요. 

문제의 사제가 성직의 '품위'와 '무게'를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이런 글을 올릴 수 있었을까요. 

일반 기업 같은 조직이었다면 이런 구성원에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요. 

"고작 정직이냐"는 항의에는 이런 의미가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물의를 빚은 연예인의 처신이 연상된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SNS로 문제를 일으킨 연예인이 우선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그래도 파문이 가라앉지 않으면 기획사가 사과하고 연예인을 은퇴시켰다가 좀 잠잠해지면 다시 컴백시키는 것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입니다.

과거에 비해 종교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는 이미 많이 낮아졌습니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아직 "성직자다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지는 않고 있습니다. 

양극단으로 갈려 엄청난 갈등을 겪는 우리 사회에서 종교와 종교인만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적어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것이겠지요.

이번 사태를 "지나가는 소나기"정도로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신자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괜한 과장이나 엄살로만 들리지 않는 요즘입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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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규돈 신부 페이스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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