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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사진) 한동대 초대총장이 30일 오전 3시쯤 별세했다.


향년 81세.


김 전 총장은 지난 5월부터 서울아산병원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유가족에 따르면 김 전 총장은 “나는 죽어도 삽니다. 죽음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기쁨입니다” 하는 말을 남겼다.


1939년 10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김 전 총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주립대에서 금속공학석사, 뉴욕 렌셀러폴리테크닉대(RPI)에서 재료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 루이스연구소와 뉴욕 인코(INCO) 중앙연구소를 거쳐 197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김 전 총장은 당시 과학기술처 첫 특성화 과제로 풍산금속과 협력해 반도체 리드프레임 ‘PMC-102’ 합금을 발명했다.


이 제조기술은 독일에 수출해 건국 이래 ‘한국기술 선진국 수출 제1호’의 기록을 남겼다.


김 전 총장은 아내에게 기독교를 소개받은 후 성경을 깊이 읽으며 회심, 이른바 ‘신트로피 법칙’에 따라 기독교 신자로서의 명예로운 삶을 추구해 왔다.


신트로피는 엔트로피의 반대 개념으로 생명과 회복을 의미한다.


미국 인코중앙연구소 시절부터 기도모임을 가졌고 귀국 후인 81년 1월 한국창조과학회를 발족했으며 서울 온누리교회 초대장로를 지냈다.


95년 한동대 초대 총장에 취임해 혁신적 커리큘럼과 기독교 정신 기반의 인성교육이란 실험을 통해 교육중심대학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무감독 양심 시험제도, 무전공 무학과 입학 및 복수 학위 제도, 전교생 생활관 입소, 영어 수업 등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공부의 목적은 철저히 이타적이어야 한다고 보고 ‘와이 낫 체인지 더 월드?(Why not change the world?)’ ‘공부해서 남주자’ 등의 슬로건을 제시했다.


19년간 한동대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잇단 고소·고발로 재판을 받고 53일간 옥고를 치렀다.
김 전 총장은 고난에 대해 마가복음 9장 49절 말씀인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를 인용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 온도에 맞는 불시험을 겪거나 통과한다”고 설명했다.


2012년부터 유엔아카데미임팩트 한국협의회장을 맡아왔으며 국민훈장 동백장, 세종문화상, 올해의 과학자상, 한국기독교 선교대상 교육자부문, 한국기독교 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1976년과 1981년 두 차례 나사가 수여하는 발명상을 받았다.

(02-2227-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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