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북에 두고 온 가족 때문에 언론 노출을 꺼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탈북 바이올리니스트 정요한(42·광림교회 집사)씨는 달랐다.
당당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마음이 컸다.
지난 19일 기자와 만난 정씨는 탈북과 관련된 내용을 전하면서 먼저 “행복하다”고 말을 꺼냈다.
“북한을 떠나길 정말 잘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 자리가) 겁이 많이 나지만 북에 있는 가족에겐 피해가 안 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빨리 남북이 통일되면 이런 상황도 없어질 텐데 말이죠.”
정씨는 담담하게 자신의 탈북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4세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평양음악대와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대 음악대학원을 졸업했고 차이콥스키 콩쿠르, 비에냐프스키 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후 북한에 돌아가 국립교향악단에서 연주하며 작곡과 창작을 지도했고 ‘김정일 전용악단 악장 겸 단장’으로 8년간 일했다.
당에서 인정을 받고 남부러울 것 없이 생활하던 그는 2007년 동유럽 대학의 교환교수로 근무하게 됐다.
그에게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은 그때였다.
한 모임에서 외국인 교수가 안색이 안 좋은 그를 보더니 “걱정이 있어요? 교회에 가 보지 그래요”라는 말을 건넸다.
예전 같으면 그냥 흘러들었을 그 말이 그날따라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에게는 오랜 기간 마음속 깊이 숨겨 왔던 비밀이 있었다.
“제 할아버지는 원래 장로셨어요. 어릴 때 저를 안고 늘 기도해 주시곤 했지요. 기독교를 믿으면 잡아가는 북한사회에서 말이죠. 우리 집안이 바로 예수쟁이 집안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인근 교회로 갔다.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그는 은은하게 들려오는 찬송 소리에 이끌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기도 중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이번이 아니면 영영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탈북을 결심했고, 2009년 대한민국에 왔다.
“남한에 와서 조사를 받는데 탈북 동기에 대해 묻더군요. 가만히 보니 의심하는 눈치였어요. 정말 기독교 때문에 탈북을 결심하게 됐는지 자꾸 물었습니다. 결국 종교적인 이유의 탈북이라는 것이 밝혀졌지요. 저는 오직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게 제 탈북 동기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2011년 그는 탈북 피아니스트 김예나(35·광림교회)씨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아내는 외가 쪽에 순교자가 있는 기독교 집안으로, 2008년 어머니와 함께 대한민국으로 넘어왔다.
김씨 모녀 역시 신앙의 뿌리를 잇기 위해 탈북을 감행했다.
부부는 1년여 성경 공부를 함께 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알게 됐다.
하나님이 모든 만물의 주관자이심을 고백하고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부부는 뛰어난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 실력으로 방송 출연과 스카우트 제의가 잇따랐지만 거절해 왔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지난 학기부터 대학 출강을 시작했다.
㈔한국기독교탈북민정착지원협의회(한정협·사무총장 석사현 장로) 홍보대사도 맡아 전국 교회를 돌며 간증집회를 인도하고 있다.
한정협은 탈북자들이 남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 선교단체다.
집회에서는 찬송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복음성가 ‘사명’ 등을 주로 들려준다.
또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파블로 데 사라사테가 지은 ‘집시의 노래’와 플루트 연주가 정사인이 작곡한 ‘사향가(思鄕歌)’ 등도 이 부부의 주요 연주곡이다.
정씨 부부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 재능을 김일성 주체사상이 아닌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며 “무엇보다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자 기적”이라고 고백했다.
“한 손에는 악기를, 다른 한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복음을 전하는 게 저희 부부의 사명입니다.
탈북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우리는 통일 선교사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고자 하는 정씨의 목소리에 힘이 느껴졌다.
(간증 집회 문의: 02-742-9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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